동물원살롱

야생멧돼지가 수난을 겪고 있다. 바로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이다. ASF(Africa Swine Fever)라고 불리는 이 병은 치사율이 거의 100%에 이르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전파력이 강한 바이러스성 출혈성 질병인데 아직 예방약도 치료제도 없다. 멧돼지를 통해 돼지농장으로 급속히 전염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애먼 야생멧돼지를 퇴치하고 있다.
ASF 감염 멧돼지 사체가 발견되면 발견지점 중심 반경 약 3km 경계에 1차 이동 차단 울타리를 설치한다. 울타리 설치는 성공적으로 ASF 차단 방역에 성공한 유럽의 체코 사례 응용이다. 산악지형이 많은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도 있지만 현실적인 대책으로 철제 울타리 설치는 지속되고 있다. ASF 발생 초기인 2020년에 환경부에서 설치한 광역 울타리가 총연장 1천km가 넘는다.
원래 ASF는 1920년대에 발생한 남부 아프리카 지역의 가축전염병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ASF가 발생 보고된 것은 1919년 9월이었다. 현재까지 3년째 심각 단계를 유지하고 있는 공포의 전염병이다. 발생 초기에는 뉴스 등 언론에 매일 톱뉴스로 보도되었으나 사람에는 감염되지 않는 데다 코로나19의 등장으로 보도가 덜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춘천의 돼지 농장 2곳에서 발생하여 방역당국을 바짝 긴장케 했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ASF전파의 주된 경로인 야생멧돼지 관리는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 멧돼지는 사실상 최상위 포식자다. 고약한 전염병 때문에 최근 수난을 겪고 있지만 그동안 상위 포식자로서의 지위를 톡톡히 누려왔다. 산과 들에 무리 지어 다니면서 먹이를 찾느라 땅을 파헤쳐 놓기 일쑤다. 수확을 앞두고 있는 고구마, 감자, 옥수수 같은 농작물을 먹어치우는가 하면 무덤주변을 파헤쳐 봉분을 훼손하기도 한다. 임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깊은 산속에 갔다가 예민해져 있는 멧돼지의 공격으로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산에서 사람을 멧돼지로 오인을 해 엽사의 총에 맞아 죽는 사고도 있었다. 축산농가의 입장에서 보면 ASF를 옮기는 멧돼지가 얼마나 얄밉겠는가. 9월 현재까지 야생멧돼지에서 확인된 ASF는 2,600건이 넘는다. 제천, 단양, 충주, 문경 지역까지 야생멧돼지에서 양성 확인이 되었다.
ASF와 관련, 정부 해당 부처를 살펴보면 두 군데로 분리되어 있다. 멧돼지에 대한 관리는 환경부이다. 야생멧돼지 이동 방지 울타리 설치나 멧돼지의 포획, 질병 진단 등이 환경부의 일이다. 마침 2020년에 설립된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축산농가에 대한 관리와 가축 질병, 방역에 대한 업무를 맡고 있다. 가축방역에 관한 한 풍부한 경험과 실력을 갖추고 있다. 빠른 시일 안에 ASF 근절을 위해 정부, 축산농가, 동물단체, 그리고 국민 모두 지혜를 모을 때이다. 자연 생태적으로 멧돼지의 개체수 조절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수렵이나 포획 등 인위적인 개입 이외에는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 생명 자체야 어디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마는 동물에 대한 감성적인 연민의 정을 앞세우다 보면 ASF에 대한 합리적인 해법을 찾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