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살롱

연극계가 서계동 국립극단 부지의 복합문화시설 조성사업을 놓고 정부와 일전을 벌이고 있다. 공청회에서 반대의견을 분명히 하고 나서 지난 8월에는 300여 명의 연극인이 모여 서계동 부지 개발사업 중지를 촉구하는 가두행진을 하기도 했다.
서계동 국립극단 부지는 국립극단이 국립극장에서 법인으로 독립해 나온 후 10여 년간 창작공간으로 사용해 왔다. 최근에 서울시의 도시계획이 변경되어 주변 도로와 사유지를 추가로 매입하는 문제가 생겨나는 바람에 시급히 개발해야 하는 사정이 생겨났다. 문체부는 이 부지가 서울역 부근의 노른자위 땅이라는 관점에서 본격적인 개발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문화시설과 주거시설이 복합된 대형건물을 신축하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 복합건물의 건축안에는 지하 4층, 지상 15층으로 1,200석의 대극장과 4개의 중, 소극장 이외에 전시실, 도서관, 자료실, 창작공간 등 공연시설과 200호의 예술인 주거시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연극계는 무슨 이유로 뮤지컬, 무용 등 다른 공연 분야가 환영하는 개발사업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일까. 독자적으로 사용해온 부지와 공연시설이 상업적으로 변질된다는 사실에 반대하고 이 부지에 국립 창작극장을 건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국립극단은 588석의 명동예술극장, 182석의 백성희장민호극장, 100석의 소극장 판 등 3개의 공연장을 소유하고 연습실 등 비교적 충분한 창작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복합시설 조성사업이 완료된 후에는 현재 소유하는 정도의 시설만 요구하여 사용하면 될 터인데 굳이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동예술극장만 하더라도 자체의 창작 능력으로 운영하기가 힘들어서 외부 연극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창작극의 부족으로 외국 번역극을 공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처지이다.
국립극단의 목표는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수준 높은 창작극의 제작과 보급이다. 수준 높은 창작극의 제작은 예술가의 천부적 재능과 피나는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자동기계처럼 양산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예술가의 창작력을 고무하는 극장이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 필자는 국립극단의 문제가 대두될 때는 영국 국립극단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국립극단을 거론한다. 서양의 대사극을 사회개혁의 모범으로 받아들여 이를 자기화했다는 점에서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 중국은 수많은 대형극장에 국립극단이 소속되어 있어서 극장 자체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북경과 상해의 인민예술극원처럼 자체의 극장을 소유하는 경우는 특이한 사례에 속한다.
국립극단이 수준 높은 창작극의 제작에 도움이 되지 않은 극장과 창작공간의 확보에 욕심을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립극단은 물질이 아닌 정신의 생산기지여야 한다. 창작과 관련이 없는 물질의 과도한 소유는 국가재정의 낭비과 불필요한 노고를 불러온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개발하고 운영하는 청소년극장도 다른 단체에 맡기도록 해야 한다. 국립극단이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은 적정한 수의 단원을 정규화하여 연극 정신으로 무장하게 하고 전국에 수많은 국립극단을 설치하여 대사극의 예술적, 사회적 역할을 확산시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