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살롱

대학 교수 레다(올리비아 콜맨)가 그리스 해안가 어느 마을에 휴가차 방문한다. 며칠 간 살 집으로 인도해준 라일(에드 해리스)은 그녀에게 유난히 친절하다. 레다에게 관심을 가져서일지 모른다. 해변에 앉아 책도 보고 풍경도 즐기던 그녀의 눈에 니나(다코타 존슨)가 들어온다. 니나는 시댁 식구들과 여행을 왔는데 세 살배기 딸 엘레나가 엄마에게서 도통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모녀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레다로부터 무엇인가 사연이 있을지 모른다고 짐작해본다. 영화 「로스트 도터」(The lost daughter, 매기 질렌할 감독, 극영화, 미국·영국·이스라엘·그리스, 2021년, 122분)의 시작이다.
영화는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해 레다의 과거를 추적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워낙 교묘하게 구성해 끝에 다다르기까지 과연 그 사연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레다가 딸들과 해변에서 놀았던 장면과 엘레나가 잠시 실종된 때를 겹쳐보면 혹 레다의 어린 딸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래서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나? 아니면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남편에게 시달리느라 얼굴에 그늘이 져 있나? 그도 아니면 시댁과의 갈등이 겪었나?
나의 모든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레다는 딸들과 수시로 통화를 하고, 과거의 남편을 보니 비교적 점잖은 남자였다. 어쩐지 레다가 매력적이고 다정한 성품의 라일에게 맘을 열지 않더라니. 또한 젊고 예쁜 니나에게 관심을 두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연민을 품은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젊은 레다는 남편과 두 딸과 함께 가정을 꾸리고 살지만 또한 자신이 하고픈 공부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래서 늘 갈등을 겪는데 특히 딸들의 투정이 심하다. 엄마의 손이 많이 가는 시기인 점을 감안하면 레다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셈이다. 젊은 레다 역은 제시 버클리가 맡았는데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로스트 도터」는 배우로도 유명한 매기 질렌할의 첫 번째 감독 작품이고 베니스영화제, 뉴욕영화비평가협회, 골든 글로브 영화상 뿐 아니라 아카데미영화상에서 감독상 후보까지 오른 작품이라 상당한 기대감을 품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에 담긴 복선이 치밀했고 수시로 변하는 주변 여건에 반응하는 레다의 섬세한 심리 묘사 역시 탁월했다. 덕분에 도대체 레다가 왜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나 스스로 복선 파악에 이력이 났다고 자부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대에 살고 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섣불리 예단해 준비할 수 없고 과거는 이미 지난 일이라 아무리 노력해도 돌이킬 수 없다. 그런데 영화라는 매체는 마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전부 장악해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준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 레다가 니나에게 던지는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우리는 무려 2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그 한 마디는 오랜 기다림에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고 영화의 잔영이 길이 남게 만들어주었다. 좋은 연출이다. 간접적이지만 독자들도 레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번 경험해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