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그저 좋아서 어릴 적부터 춤을 추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세상에 춤밖에 없는 듯 춤을 추었습니다.
사춘기 시절, 다들 그렇듯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다른 분야의 예술하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창작 세계에 눈을 떴지요. 동시에 방황이 시작되었지요. 너무 어려서부터 무용만을 해서일까요. 젊은 한때의 방황이라기엔 나름 심각했어요.
그 시절, 아마도 삐딱하고 반항적인 표정을 하고 있었을 저를 말없이 이끌어주신 분이 안제승 교수님이셨어요. 무용가 김백봉 교수님과 다시 연결도 해 주셨지요. 그 만남이 저의 춤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20세기 한국춤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평론가요 연출가이신 안 교수님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시절 만나 무용이론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은 무용가로서는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후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할 때도 교수님은 부족한 제자가 새로운 무용인생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무용예술가로 무용교육자로 제대로 설 때까지 늘 살펴주셨지요. 박명숙이 안무가 무용수로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 주신 분도 안 교수님이셨습니다.
교수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몇 장면들이 있어요.
무용이론 시험감독으로 들어가 칠판에 문제를 옮겨 적어야 하는데 읽기도 어려운 한자들이 줄줄이…, 앞이 캄캄했죠. 시험감독 체면이고 뭐고 그 길로 안 교수님 연구실로 뛰어 내려갔어요. 책망을 각오했는데 빙그레 웃으시던 모습! 그 자애로운 미소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외부 활동이 많아 학교에 다시 들어갈 수 없을 때마다 아버지 같은 미소로 격려해주시던 선생님! 박사학위논문 「최승희 예술이 한국 현대무용에 끼친 영향」(1994)도 지도해주신 교수님은 저에게 큰 나무 같은 분이시고 저의 영원한 멘토이십니다.
저의 무용인생 고비고비마다 자애로운 미소로 때론 엄격한 가르침으로 이끌어주신 안제승 교수님! 그립고도 그립습니다.
2022년 9월 제자 박명숙 올립니다.(*)

참고: 안제승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 발간 「안제승」(pp.51~52)에 수록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