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7일 인쇄
2019년 12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12월호 통권 526호 |2020년 5월 25일 월요일|
 

만화살롱

 

커피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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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용(張晌傛)(만화평론)

‘만화살롱’은 실재하는 공간일까?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실을 현존하는 만화살롱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만화살롱을 얼마 전 오픈한 주인공은 여성 만화가로 첫 이사장이 된 만화가 이해경(68)이다. 「매주 만화」 연재작 ‘잠들지 못하는 여자’가 그의 대표작이다.
선천성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타는 이해경은 만화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커피 애호가답게 이사장 취임 후 삭막했던 이사장실을 만화커피살롱으로 변모시켰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든 그가 손수 내린 핸드드립 커피를 대접받는다. 한 모금만 마셔 봐도 이 커피가 심상치 않은 맛임을 깨닫는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라면 절대 한 잔으로 끝내지 못한다. 염치 불고하고 그에게 “한 잔만 더 주실 수 없을까요?”라고 부탁하게 된다.
핸드드립 커피는 손맛이다. 그는 인도네시아 만델린 원두만 고집한다. 신맛보다는 쓴맛을 즐기는 취향 탓이다. 쓴맛이라고 하지만, 이해경표 핸드드립 커피는 뒤끝이 달다. 이 방의 벽에는 편한 느낌을 주는 그의 만화 일러스트 작품들이 큰 액자에 걸려있다.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다 보면 뿔이 나서 찾아온 이도 그에게 속마음을 줄줄 털어놓게 된다.
그의 만화살롱 제1호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광릉국립수목원 부근 포천 고모리에서 운영한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 ‘잠들지 못하는 여자’였다. 1970년대부터 집에서 사이폰 커피를 즐긴 그는 진정한 만화살롱 구현을 꿈꾸었다. 만화, LP판, 동양화의 삼박자에 기막힌 핸드드립 커피를 제공하는. 주인의 몸이 불편한 탓에 손님 둘이라도 메뉴를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좀 특이했다고 할까.
‘잠들지 못하는 여자’라는 명칭은 밤에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를 뜻하지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술집으로 오인한 취객이 “내 팔베개를 해줄 여인이 있냐?”며 찾아오기도 했다. 이곳을 찾는 손님의 상당수가 불륜이었다. 이들은 이해경에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으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졸지에 불륜 상담역이 된 셈이다.
고담준론이 오가는 문화, 만화살롱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게 됐다. 게다가 핸드드립 커피라는 콘셉트도 시점이 조금 빨랐다. 2~3년만 늦었다면 영업은 좀 더 나았을지 모른다. 이두호 같은 선배만화가는 이런 사정을 알고 “빨리 때려치워라”며 호통을 쳤다. 이해경은 빚만 지고 가게를 접었다.
그때의 경험은 만화가인 그에게 작품 소재가 됐다. 그는 최근 ‘잠들지 못하는 여자’를 소재로 한 만화책 「커피 로맨스」를 펴냈다. 총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작품집이다. 장애인 만화가가 운영하는 커피집을 찾는 이들의 사연이 제각각이다. ‘잠들지 못하는 여자’가 남긴 또 다른 유산은 어떤 이와도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맛있는 커피와 쿠키를 대접받은 사람은 그에게 마음을 열 수밖에 없다. 나는 지난해 이해경에게 빨간색 제라늄 화분을 선물했다. 휠체어에 앉아있을지언정, 예쁘고 생기가 넘치는 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사장 2년 임기 후 제3의 만화살롱을 열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때 망해서 더는 못한다. 지금 이사장실에서 무료장사 하는 거로 만족한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