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7일 인쇄
2019년 12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12월호 통권 526호 |2020년 5월 25일 월요일|
 

자전거살롱

 

야라 ‘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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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우(全相宇)(여행작가)

자전거꾼들의 세상도 우리네 세상과 다를 바가 없다. 마음에 드는 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이 또 많고, 더 이상한 꾼까지 가지가지. 그런데 이 여러 군상 가운데 다른 꾼들을 가장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게 ‘뒤돌아보지 않고 침 뱉는 이들’이다. 길을 걸을 때라면 휴지로 코를 풀거나 해서 휴지통으로 깔끔하게 처리해 남의 눈총을 살 일이 없지만 잔거질을 하다가 코를 풀려고 길 한쪽으로 비켜서서 휴지를 찾을 잔거꾼은 한마디로 말해 ‘없다’다. 꾼들 사이의 코풀기 예절은 ‘팽’ 하기 앞서 한 번 흘낏 뒤돌아보기다. ‘팽’ 했을 때 파편을 뒤집어쓸 사정권에 들어오는 꾼이 없는지 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잔거질 하다 보면 이 기본 예의 없이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고 ‘팽’ 해서는 뒤에 파편을 날리고 앞만 보고 당당하게 가는 ‘나쁜 꾼’들이 한둘이 아니다.
내게는 뒤도 안 돌아보며 ‘팽’보다 더한 민폐는 자신의 존재를 가리고 다니는 이른바 검은 옷 밤손님 ‘닌자’들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며 하루가 다르게 날이 짧아만 간다. 다섯 시만 지나도 날이 어두워지는 걸 보게 되니 밝음의 힘이 어둠의 손아귀에 질식하기 전에 집에 들어가려 페달질이 빨라진다. 자전거라는 게 밝을 때 타라 있는 거지 어두울 때 타라 만든 게 아니다. 한여름 땡볕과 더위를 피해 ‘야라 (야간 라이딩)’ 모임을 일삼아 하는 꾼들도 있는데 아직 한 번도 밤에 잔거질 모임을 해본 일이 없다. ‘야라’를 말리지는 않지만 권하고 싶지도 않다.
어디 들렀다 가는 길에 날이 어두워지면 우선 핸들에 달린 플래시가 충분히 밝은지, 안장 뒤와 헬멧에 달아 둔 붉은 꼬리 등이 제대로 깜빡이는지 확인 또 확인이다. 이렇게 조심에 또 조심을 더 하고도 어두워지면 속도를 줄이는 게 나도 지키고 남도 지키는 첫걸음이다. 잔거 실력이 얼마나 대단들한지 모르겠는데 ‘닌자’들에게는 이런 기본이 없다. 전조등을 켜지 않은 건지, 전지가 다 닳았는지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달지를 않은 건지 제 앞가림은 어찌하는지 모르겠다. 붉은 깜박등도 없으니 뒤에서 차라도 오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진짜 ‘닌자’들인지 어쩜 그리 옷도 검정, 헬멧까지 검정이다.
앞뒤로 플래시나 깜박등을 다는 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너 나 잘 하세요’가 아니다. 우리나라 도로교통법 제 50조에는 자전거가 ‘밤에 도로를 통행하는 때에는 전조등이나 미등을 켜거나 야광띠 등 발광장치를 착용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의 한 자전거 회사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낮에 전조등을 켜 사고율을 각각 25퍼센트, 13퍼센트 낮추었다는 연구결과를 들어 자전거도 낮에 라이트를 켜서 사고를 줄일 수 있다며 ‘낮에 켜는 전조등’ 마케팅에 나섰다. 포화된 기존 시장을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열어 보려는 상업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잔거질이 더 안전해질 수 있다면 그냥 상업주의라며 마다할 일이 아니다. 요즘 나오는 충전식 LED등은 조그마하면서도 ‘내 여기 가고 있소’라는 본연의 목적을 제대로 한다. 커피 두 잔 값이면 산다. 제발 달고 다녀라. 그도 아깝다면 핸드폰 플래시라도 켜고 조심조심 타라. 배짱이 좋은 건지 오늘날 잔거족 ‘닌자’는 지켜 줄래야 지켜 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