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7일 인쇄
2019년 12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12월호 통권 526호 |2020년 5월 25일 월요일|
 

공연평

 

서울무용제 40주년의 의미와 가치를 높이는 무용가들
- ‘명작무극장’과 ‘무념무상I-어메이징 마에스트로’를 중심으로




심정민(沈廷玟)(춤평론)

* 한국무용협회 「서울무용제」(10월12일~11월29일 아르코예술극장 등)
현재 무용계에는 크고 작은 축제와 기획공연들이 즐비하다. 아니 난립하다시피 한다. 수많은 축제와 기획공연들 사이에서 의미와 가치를 확립했거나 확립해가고 있는 것들도 있으나 야심차게 출사표를 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들도 부지기수다. 가희 축제와 기획공연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최근의 무용계에서도, 차별화된 의미와 가치를 지닌 축제라고 한다면 40주년을 맞이한 「서울무용제」를 빼놓을 수 없다.
「서울무용제」는 1979년 출범 당시 「대한민국무용제」란 명칭을 달고 있었으며 1990년부터 지금의 「서울무용제」로 명칭을 확립하였다. 1988년과 1992년 그리고 1995~1998년에는 한시적으로 「서울국제무용제」란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1세기 남짓한 우리나라 무용계의 흐름에서 40주년을 맞이한 「서울무용제」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는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용계의 대표 행사라는 말이 무색하게 무용계 전체를 아우르지는 못하는 시기도 있었다.
2017년 봄 조남규 교수는 한국무용협회의 22대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무용계를 폭넓게 아우르면서 공정성 확립을 최우선시 하는 쇄신을 단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따라 한국무용협회의 대표 행사인 「서울무용제」는 강력한 쇄신의 대상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갖춘 축제로 나아갔으며 경연의 경우 공정성을 최우선시 하였다. 반신반의하던 무용가들이 점차 신뢰를 회복하여 최근 들어서는 적극 「서울무용제」에 참여하고 있다. 특정 계파를 넘어 무용계를 널리 아우르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올해 개막식에는 무용계와 그 주변의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여 쇄신된 「서울무용제」의 위상을 높여주었다. 10월12일부터 11월29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등지에서 ‘창작의 씨앗을 키우다, 예술의 꽃을 피우다’라는 슬로건으로 펼쳐진 「서울무용제」는 사전행사, 특별공연, 메인행사, 연계행사로 진행되었다. 우선 사전행사로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전통무용협동조합들의 공연과 함께 한국발레협회, 한국현대무용협회, 한국춤협회의 공연 그리고 「4마리 백조 결선」이 있었다. 특별공연에는 「서울무용제 걸작선」과 연계행사인 「대학무용축제」가 펼쳐졌다. 가장 주목도가 높은 메인행사는 개막식, 무념무상(舞念舞想), 명작무극장, 열정춤판, 남판여판춤판, 인생춤판 그리고 경연으로 이루어졌다.
11월13일 개막공연이었던 ‘무념무상I-어메이징 마에스트로’에서는 1980~90년대에 큰 발자취를 남긴 무용가이자 서울무용제 최고상 수상자인 안신희, 최은희, 김화숙, 이정희의 춤을 선보였다. 『황후의 눈물』을 선보일 예정이었던 안신희는 갑작스러운 병세로 인해 출연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인터뷰 영상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발자취와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은희는 부산에 터를 잡고 있는지라 서울 무대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무용가다.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에서 최은희는 자연의 일부로 태어난 ‘나’의 존재성을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실제화하였다. 영상 등의 매체에도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인생(Life)』은 김화숙의 춤 인생을 짧지만 ‘커다란’ 작품에 응집해놓은 듯하다. 영상 속에 주옥같은 대표작들이 흐르는 가운데 특히 ‘광주민중항쟁 무용 3부작’이 짙은 인상을 남긴다. 김화숙의 독무는 자신의 영혼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슬픔을 고요하게 인내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는 무대미술과 조명 그리고 라이브연주와 어우러져 보다 깊고 짙은 내음을 풍긴다. 기념 갈라로 흐르기 쉬운 이러한 무대에서 예술성 높은 작품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아직 소진되지 않은 김화숙의 창작적 자산을 확인할 수 있다.
『살푸리와 나』에서 이정희는 자신의 이름과 동일시되어온 살푸리 연작을 2019년의 자신의 삶과 춤으로서 풀어낸다. 인터뷰 영상을 통해, 국내에서는 드물게 포스트모던댄스를 폭넓게 수용하고 표출한 무용가로서 지금 세대의 선구적인 활동을 펼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서 이정희와 그녀의 두 딸 이루다와 이루마와의 춤 협연은 우리 무용계의 과거와 현재, 현대무용과 컨템포러리댄스, 표현적 신체와 감각적 신체를 아우르고 있는 듯하다.
11월17일 ‘명작무극장’에서는 김백봉의 『부채춤』, 국수호의 『장한가』, 배정혜의 『풍류장고』, 조흥동의 『한량무』, 은방초의 『회상』을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무대가 마련되었다. 한국무용협회가 공식 지정하는 명작무는 우리시대 명무들의 명작무의 우수성을 알리고 이를 계승해가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춤이 극히 제한적인 현실에서 보다 많은 춤을 남기는 데 일조할 수 있으리라 본다. 1992년 김진걸의 『산조』와 김백봉의 『부채춤』을 시작으로 하여 1993년 조택원의 『가사호접』과 최현의 『비상』이 지정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뜸하다가 2006년에 송범의 『참회』, 김문숙의 『대궐』, 최희선의 『달구벌 입춤』, 조흥동의 『한량무』 그리고 2013년에는 김상규의 『활량(화랑)』, 배명균의 『혼령』, 황무봉의 『무아의 합장』, 이숙향의 『밤길』이 지정된 바 있다. 2017년 배정혜의 『풍류장고』와 국수호의 『장한가』에 이어 올해는 은방초의 『회상』이 제15호 명작무로 지정되었다.
한 시대를 풍미하였고 여전히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원로 대가들의 춤은, 극장예술로 확립된 우리 춤의 예술적 뿌리와 정체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일부는 거동이 자유롭지 못할 정도로 연로했음에도 소위 말하는 원조, 시조, 창시자라고 불릴만한 인물들의 혼을 담은 춤사위는 예술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낸다. 궁극의 춤이란 기량을 초월하여 소우주적인 존재감으로 공간, 소리, 빛 그리고 관객과 함께 할 수 있는 움직임이라는 깨달음 말이다. 이를 환기시키는 100분이라는 공연 시간이 전혀 길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40주년을 맞이한 「서울무용제」는 약간 과하지 않나 할 정도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하였다. 그 속에서 무용계를 크게 아우르면서 「서울무용제」의 의미와 가치를 되살려보려는 열과 성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명작무극장’과 ‘무념무상I-어메이징 마에스트로’는 현재의 춤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들과 어우러져, 극장예술로서 정착 및 발전을 거듭해온 우리 춤의 맥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서울무용제 40주년의 의미와 가치를 한층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