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무기

* 이나현 안무 『안무노트』(3월 20일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
가끔 객석에 앉아 주위를 살펴보곤 한다. 그러면서 여기 온 사람 중에 순수 관객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본다. ‘순수’라는 말이 불순이란 말의 반의어가 아닌 표를 사서 극장을 찾은 대중 혹은 참여자와 지근거리에 있지 않은 관객을 의미한다면 무용 공연에서 순수 관객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무용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대중에게 없기 때문일 듯하다. 이는 무용을 정규 교육 과정에서 한 번도 배울 기회가 없었으니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지 알지 못하고, 몸으로 표현하는 장르이기에 안무자 혹은 무용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나현 안무의 『안무노트』는 대중에게는 무용의 동작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단상(斷想)을 보여주면서도 무용과 직접 관련이 있는 관객에게는 자신이 가진 안무에 대한 인식과의 다름, 유사성을 인지하는 자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안무노트’란 제목처럼 작품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게 ‘렉처 퍼포먼스’(Lecture Performance)를 지향하며 관객과 만난다.

우선 영상으로 독일에서 안무한 안무자의 초기 작품이 흐르고 이 작품에 대한 설명으로 그의 무용철학을 밝힌다. 안무자는 무용의 본질은 움직임이라 설명한다. 아무래도 무용이 갖는 장단점은 몸짓으로 모든 걸 표현한다는 점일 것이다. 다른 무대 공연예술이 언어에 기반을 둔다면 무용은 움직임으로 말한다. 그래서 무용만큼 정직한 장르가 없다고 말하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동작이 아닌 직관과 이성에 의한 주관적 표현으로 나타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바탕에서 안무자는 서사구조보다는 의식의 흐름을 강조한다. 지금 이 순간 여기서 이루어지는 여러 행위에 대한 인식이 안무자와 무용수 그리고 관객이 살아있음을 함께 공유하는 작업으로 구현된다.
이를 안무자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춤추는 단계, 춤을 추지 않는 단계 그리고 내버려 두는 단계로 융화되어 움직임이 수행 자체이며 자신을 찾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말한다. 이는 간혹 현대춤에서 무용수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무용수 혹은 안무자만이 알 수 있는 소격효과(疏隔效果, Verfremdung)를 생산하지만 그것이 정반합(正反合)을 이루어낼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준다.
이 렉처 퍼포먼스에서는 현대춤이 가지는 여러 특질을 설명한다. 음악도 그러하다. 현대춤은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닌 동작 그 자체가 리듬임을 강조한다. 발레와 한국춤이 음악 혹은 장단과 합이 중요하다면 현대무용은 움직임의 흐름에 따라 음악이 도움을 주는 형태이다. 즉 극단적으로 파열음이나 무음악의 휴지(休止)처럼 부조화와 조화도 존재하는 것이 현대춤과 음악의 상관적 관계이다.
안무자는 ‘거울 속의 거울’에서 주제부의 팔 동작을 일례로 들며 단조로운 피아노 음악의 반복에 대한 확장성을 설명한다. 반복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확보하기 위한 확장성이 나타나고, 또 다른 표현 방법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말한다. 흔히 이를 코레오그래피(Choreography)라는 말로 춤의 연속성 속에서 안무자가 발견하는 움직임의 존재의식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안무노트』는 안무가가 한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짧은 리허설 형식으로 관객과 소통한다. 이미 안무가의 머릿속으로 그려진 한 동작을 두 명의 무용수와 동작을 만들어가며 변화를 가지고 오고, 이는 다른 신체를 만나 확장, 변용되는 움직임에 대한 생산적 의미의 확보로 나타난다. 그래서 현대춤은 즉흥적일 수도 의도적일 수도 있지만 우연성을 통한 새로운 의미의 생산이라는 특질이 있다. 이는 안무자가 어느 정도의 독재자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이나현 안무자가 지니는 사물에 대한 유연성으로 협업을 지향하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무용수가 나와 말한다. 이런 자율성이 무용수에게도 자유로운 창작의 바탕을 만들고, 거기에 안무자의 의도를 따라야하는 혹은 존중하려는 인식도 함께 생길 수 있음의 이면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무용계의 관습이나 현실에서 쉽지 않은 구조이다. 보수적이고 순종적인 도제식 교육에 의해 기법을 배우는 과정에서는 답습만이 있을 뿐인데, 이런 방법은 틀에 의한 것이 아닌 무용수에게는 열린 사고(思考)를 또 안무자의 의도에 대한 긍정적인 변용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하나의 시퀀스는 군무(群舞)로 확장이 이루어진다. 현대춤이 가지는 특질 중 하나인 군무도 같은 동작의 일치가 아닌 공간에 대한 인식을 통해 그 여러 개성이 모여 다양성의 표출로 나아간다. 안무자도 작품 『기억흔적』(2014)을 예로 들며 어떤 큰 스케치를 하기 보다는 매 연습마다 다른 의미를 발견하여 조각조작 붙이는 것도 움직임을 통해 우연성을 발견하고, 공간을 인식하여 선택적 발전을 가지고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동작, 형태보다는 공감각적 느낌에 의해 리듬을 찾아 움직임을 만들어냄을 강조한다. 이는 움직임에서 리듬, 표현의 이지적 감각을 찾는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움직임이 어떤 경우 생경함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문예이론인 ‘낯설게 하기’가 예술에서 심미적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지만 인식의 어려움으로 관객에게 집중시키는 과정을 가지고 옴과 함께 그게 끝내 미지로 빠질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문제와 맞물려 안무자는 무용의 경제적 가치, 대중성에 대해서도 설파한다. 이러한 문제는 무용의 근본적인 문제점 중 하나이지만 경제적 가치로 보았을 때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인 무용이 이 시대 어떠한 존재인지, 대중성, 경제성도 생각할 여지를 전해준다.

이 공연은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 재개관 공연으로 이루어졌다. 지역의 이런 기획 공연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공연자에게는 무대 제공을 만들어주며 동네에 사는 주민들은 편하게 걸어서 극장을 찾아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앞서 논한 문제를 여기에 대입하여 이 렉처 퍼포먼스도 일반 관객의 비중은 그리 많지 않은 듯 느껴졌다. 이 공연에서 대중이 깨달음을 가지고 왔듯 관객이 아닌 대중과 만남은 결국 무용 대중화, 문화콘텐츠로 재생산을 가지고 오는 원인이라는 상식적인 본질도 여기서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안무노트』는 두런두런 안무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펼쳐놓지만 무용에 대한 본질을 고민하게 만드는 자리였기에 의미 있는 시공간이었다. 대중도 한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을 것이다. 아쉽다면 마지막에 앞서 조율된 동작을 모티브로 한 짧은 행위가 있었다면 어떠하였을까 욕심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