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살롱

친구가 탄다는 5백 만원짜리 자전거는 엄두가 안 나고 내가 당장 국제대회에 나갈 일도 없을 듯하여 한 백만 원짜리를 구입하여 친구와 만났다. 학교 다닐 땐 나보다 운동도 못하던 친구이니 비록 내가 지난 몇 해 일에 묻혀 지내느라 뱃살은 좀 나왔어도 앞서지는 못하더라도 크게 뒤쳐지지는 않으리라 다짐했다. 쫙 빠진 몸매에 내 자전거 다섯 개쯤 살 수 있는 값이지만 헌 자전거 아닌가? 새로 사서 번쩍번쩍 내 새 자전거를 비교하면 뭐 이렇다 하게 꿀릴게 없었다. 봄바람에 몸도 가벼워진 듯하다. 근데 이 친구는 그동안 자전거 자랑이라면 밤도 새더니 왜 이리 느린거야. 그럼 그렇지 비싼 자전거라도 다 사람이 타는 일이거늘 차이가 나봐야 얼마나 나겠어? 그래도 나같은 초보자 앞에서 달리는 모습 좀 보여줘야 하는거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끝에 ‘야 좀 달려봐!’하고 한마디 건네기 무섭게 친구는 ‘생-’ 앞질러 가는데, 무슨 짓을 해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도 없고 친구는 갈수록 멀어져갔다.
자전거에 첫걸음을 딛는 이들이 흔히 빠지는 딜레마이다. 이미 자전거로 담금질해낸 몸매에다 성능이 더 좋은 자전거를 탄 친구를 초보자는 따라 갈 수 없다. 자전거의 엔진은 타는 이의 몸이다. 그동안 자전거로 가다듬은 좋은 엔진에 가벼운 차체를 어찌 따라잡겠는가? 무거운 짐을 옮기려면 더 힘이 들고 같은 힘을 쓴다면 무거운 짐을 실은 수레가 뒤쳐지는 건 당연하다. 몸무게 차이가 5킬로그램이라면 그만큼 더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이니 같은 조건에서라도 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언덕을 만나면 그 차이는 결정적이다. 더는 쫓아갈 힘이 없어 앞서 언덕을 넘어 보이지 않는 친구가 어디선가 기다려 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
자전거 경기에서의 승패는 이미 공장에서 결정이 난다고 한다. 나보다 더 좋은 자전거를 탄 사람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럼 ‘뚜르 드 프랑스’ 같은 유명 대회에도 좋은 자전거 가지고 나가면 우승할 거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세계 최고의 엔진을 가진 선수들인 만큼 매번 자전거 성능을 0.0001%라도 개선시켜 가지고 나온다. 하루에 200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쉬지 않고 20일 넘게 달린다 생각해 보라. 게다가 피니쉬 라인에서 1등과 2등의 차이는 고작 바퀴 반개도 안된다. 그러니 0.0001%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0.0001%라도 성능이 나아진 자전거는 점점 더 비쌀 수밖에 없다. 자동차도 수천만 원에서 흔히들 명품이라 부르는 수억 짜리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있고, 경주에서 선수들이 모는 수십억 하는 F-1급이 있듯이 자전거도 F-1급들이 있다. 물론 동네 장보러 갈 때 그랑프리 급 차를 몰고 가지 않듯이 내 수준과 목적에 맞는 자전거를 선택하면 된다.
에디 먹스(Eddy Merckx)라는 전설적 자전거 선수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자전거 업그레이드를 할 게 아니라 언덕 오르기를 하라(Don’t buy upgrades, ride up grades.)” 자전거 보다 몸만들기를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나 몸이 안되면 자전거라도 좋아야 한다. 몸이 무거우면 자전거라도 가벼워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프리미엄 급 친구들과 달려야한다면 5백만 원은 투자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게 길게 봐서 결코 후회 않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