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살롱

요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출판’을 검색하면 온통 정치인들의 출판 기념회 소식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선거철이 임박했다는 신호다. 정치인들이 책 쓰기에 이렇게 열중하는 나라는 달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의 저서가 그렇게나 많이 발행되면서도, 정작 서점 서가에 꽂히는 책은 매우 드물다. 서점에서 팔릴 만한 책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일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찾기 어려운 진풍경이다. 물론 그 뒷사정을 모르는 이는 없다. 출마 후보들의 출사표이자 홍보 전략이며, 정치 자금 모금을 위한 거의 유일한 합법적 수단이라는 것을. 6월13일 치러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차기 광역 및 기초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을 꿈꾸는 이들의 행렬이 바로 철마다 벌어지는 볼썽사나운 출판 기념회의 정체다. 지자체장과 지자체 의원 수에 몇 배(경쟁률)만 곱해도 대략 수천 종의 ‘속성 신간’이 발행되고 그 만큼의 출판 기념회가 개최된다. 출판 기념회 행사장에서는 대체로 2만 원 정도의 책값을 붙여 놓고 판매하는 모양새를 갖추지만 정가대로 책값을 내는 사람은 없다.
이제라도 후원금 모금을 합법화하여 투명하게 관리하는 방안을 찾거나, 몇 차례나 시도했다가 무산된 정치자금법 개정을 통해 ‘정가 판매’를 제대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출판 기념회 초청장이 돈 봉투 청구서가 되고, 엄연히 도서정가제를 하는 나라에서(그것도 인터넷서점의 15% 직간접 할인에 온갖 꼼수 할인이 판치는 싼 것만 좋아하는 나라에서), 기이하게도 책값의 몇 배씩 얹어주는 미풍양속이 자리 잡은 걸 보면 어지간히 정치인과 책을 사랑하는 민족임을 깨닫게 된다.
그 책들의 내용은 어떨까. 정치인으로서의 혼과 열정을 담아 유권자들과 공유하고 소통하고 싶은 콘텐츠를 담는 사례도 드물게 있겠지만, 대다수는 입지전적인 자화자찬에 시민의 종복으로서의 탁월한 봉사정신, 뛰어난 능력과 업적을 내세우는 불세출의 영웅담 범주를 벗어나지 않을 터이다. 그나마 그런 책을 본인의 머리와 손으로 고생하며 쓰기라도 했다면 다행이겠다. 십중팔구는 대필이다. 대필 작가들에게는 고마운 특수의 계절이지만, 정치인 당사자들에게는 저자 실명제의 도덕률이 시험대에 오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자서전이든, 정치적 비화나 비전을 담든, 정치인의 책은 쉽게 쓰기 어려운 법이다. 정치인의 출판 활동은 기록으로 남는 정치 행위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 자금을 모급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정치인의 책은 현실 정치가 유권자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거의 아무런 메시지도 전달하지 못한다. 아무도 읽지 않고 아무도 평하지 않는다. 그렇게 이 땅의 정치구조는 선거철부터 불필요한 자폐적 커뮤니케이션을 양산한다. 가뜩이나 책을 안 읽는 나라에서 책에 대한 신뢰를 키우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 후보 난립과 함량 미달의 ‘선거 출판’이 사라지기를, ‘거품 출판’의 공해를 키우는 정치자금 모금 제도의 혁신을 바란다. 마침 ‘2018 책의 해’(문화체육관광부 지정)를 맞이하여 바라는 바다. 책도 이제는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시인)고, 가짜 정치인과 가짜 책, 가짜 정치 자금 모금은 사라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