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7일 인쇄
2018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1월호 통권 503호 |2018년 10월 18일 목요일|
 

공연평

 

산다는 것은 죽음에 직면하는 것이다
- 전혁진·박호빈·최상철




정기헌(朴玟京)(춤평론)

*전혁진 안무의 『완벽한 죽음(Perfect Death)』(12월8~9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죽음에 있어 완벽함이란 무엇일까? 평온한 죽음, 또는 생을 잘 마감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대체 죽음의 상황에서 완벽함이란 단어가 붙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안무자 전혁진은 완벽한 죽음에 한 가지 단서를 붙였다. 죽음의 시계를 인지할 수 있을 때의 죽음이다. 그리고 생의 과정으로써 죽음에 대비되는 탄생이 같은 지점에서 이어진다는 전재를 붙였다.
전혁진은 무대에 홀로 서서 생의 과정의 마지막 종점인 죽음을 마주하고 있다. 온전히 소멸로서의 죽음에 집중하고 있으며 타인의 기억이나 인식 따위는 생각조차 없는 듯하다. 죽음의 문 앞에서 관조하고 서 있으며 두려워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단지 생의 단계로써 죽음을 취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는 듯하다. 생의 소멸 상황을 지극히 자의적인 통제 속에 쥐고 있다. 작품은 철저히 죽음이라는 현상, 죽음의 느낌, 죽음의 인지를 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죽음이라는 과정을 눈앞에 두었을 때 따르는 삶의 반추나, 생의 의의, 죽음 이후에 남겨짐 등에 대해서는 정서의 확장을 만들지 않는다. 죽음이란 상황과 마주할 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이기적인 설정이 아닐까 싶다. 춤과 움직임 주변에 만들어진 쓸쓸함, 실처럼 마른 나뭇가지처럼 적막함이 가득하다.
인간이 죽음과 직면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생의 마지막 과정으로 반드시 선택해야 할 순간인 것이 작품을 통해 분명하게 느껴진다. 인간의 인격이 온전하게 또는 완벽하게 소멸 하는데 무엇이 필요한지 전혁진이 춤으로 그린 제안은 음미할 가치가 충분하다.

* 박호빈 안무의 『햄릿, 카멜레온의 눈물』(12월9~10일 강동아트센터 소극장드림)
햄릿과 오이디푸스의 핵심대목을 재구성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어떤 예술가에게든 도전하고 싶은 매력적인 텍스트다. 두 개의 스토리라인에 담겨있는 인간 본성의 도덕, 열망, 욕심 등을 작품으로 꺼내보는 시도는 어느 시대 어떤 환경에서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햄릿, 카멜레온의 눈물』은 안무자 박호빈과 연출가 필립 파(Philip Parr)의 협업이다. 두 사람은 인간의 내면에 꿈틀대는 인격을 여러 갈래로 분석하여 4명의 출연자에게 다양한 인격을 중첩시키며 오이디푸스와 햄릿의 접목을 시도했다. 작품이 전개되면서 출연자들은 원작의 핵심 텍스트들을 무대에 산발적으로 외치듯 던져 놓는다. 도발적인 모습이지만 질서를 가지고 있다. 무대 중앙에 걸려있던 커다란 모니터(미디어박스)가 내려오고 4명의 출연자가 산개했던 캐릭터들의 응집을 이루며 모여 앉는다. 미디어박스에서는 지금껏 믿어온 텍스트가 왜곡되었음을 시사하고 작품속의 인격을 다시 흩어 놓는다. 이 상황은 마치 무의식중에 갑작스럽게 튀어 오르는 생각의 단편, 생각의 꿈틀거림이 무대에 쏟아져 나온 것 같다.
작품은 오이디푸스와 햄릿의 혼재를 통해 합을 이루거나 깊이 있는 무언가를 생산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두 원작 속의 인격분석과 이를 표현하는 인물중첩의 실험에 목표를 두고 있다. 여기서 누가 오이디푸스고 누가 살인자이며 클라디어스는 또 누군지 구분할 필요는 없다. 그 살인자가 나일지도 모르고 너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여러 색깔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숨겨놓은 인격 몇 가지를 품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연극배우와 한류리, 박명훈 두 춤꾼은 인격의 소음들을 열정적으로 끄집어내었다. 인간의 속마음을 한 겹씩 풀어낸 즐거운 실험이었다.

* 최상철 안무의 『혼돈(Chaos)』(12월14~15일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
어둠 속에 무용수들이 하나 둘 등장하며 바닥에 바짝 엎드려 미끄러지듯 무대를 횡으로 가로지른다. 무대를 평면으로 활용하지만 깊이의 끝을 알 수 없는 공간을 유영하듯 ‘혼돈’의 공간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이때 조명은 공간의 위아래를 수평으로 잘라내고 분리한다. 이어서 업스테이지에 직각으로 떨어트리는 빛기둥에 2명의 남성 무용수가 공간 사이를 오가며 특별한 인상을 만든다. 무대 뒤편에는 여러 개의 조명이 커다란 원을 이루며 공간의 중심을 장악한다. 안무자 최상철이 그리는 빅뱅 이후 혼돈과 새로운 질서의 낯선 공간이다. 공간을 채우는 요소는 빛과 소리, 사람의 에너지 등이다. 이중 하나만 있어도 공간은 성립된다. 팽창된 에너지의 대폭발인 빅뱅은 그 자체가 새로운 공간이다. 마찬가지로 정신이 번쩍든 순간이 사람에겐 빅뱅의 순간이며 자신을 둘러싼 공간의 시점이 바뀐다.
작품 속에 김재덕의 음악은 안무자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데 큰 비중으로 이미지 메이커 역할을 한다. 비트와 구음이 반복적으로 진행되며 선명한 인상을 만든다. 이 소리들의 분절이 춤과는 어긋난 것 같은 느낌이 수차례 들지만 뭔가 어색한 혼돈의 공간인 것은 틀림없다. 춤의 구성에서 빨간색 캐릭터가 현실 너머의 초월적 존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무질서한 공간의 빛과 사람, 음의 용융점 역할로는 미흡하다. ‘혼돈’은 안무자의 상상에 의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까지가 매력적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