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7일 인쇄
2018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1월호 통권 503호 |2018년 8월 15일 수요일|
 

춤산책

 

좋은 사람 만나기 (1)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이동우(李東祐)(춤평론)

성경에서는 모이기를 힘써 행하라고 하지만, 신기하게도 두세 사람 이상이 모이면 꼭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사람 한 사람은 꼭 있다. 그것이 첫 만남부터 그럴 수도 있고, 시간이 가면서 잘 맞지 않다고 느낄 수도, 어떤 계기를 통해 의가 틀어지면서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가족 간에도 해당되는 건 마찬가지다. 단지 독립하기 전까지는 싫던 좋던 함께 살아야 할 수밖에 없다는 특수성 때문에 일종의 체념이 자고로 가족은 ‘칼로 물 베기’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가족의 구성원도 결국 각각 서로 다른 성격과 영혼을 가진 별개인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영혼의 주파수가 맞는 남이 그렇지 않은 영혼을 가진 가족보다 나을 때도 있는 것이다.

새 마음, 새 출발의 새해가 되면 대부분 사람들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소원한다. 인생을 몇 번을 살아도 새해에는 늘 새로울 것이라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만 매번 속는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소원은 소원일 뿐, 1년 중 평탄하게만 살 수 있는 날이 과연 며칠이나 지속되는지는 알 수 없다. 인간사에서 개개인을 울고 웃기는 원인은 천재지변과 같은 불가항력의 사건보다는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에서부터가 압도적이다. 서로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만나 인연을 맺어 조율을 해가며 좋은 관계를 구축해나가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보다는 이미 갖추어진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바란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것이 친구이든, 동료이든, 가족 구성원이든. 그렇지만 개인이 됐든 남이 됐든 어쨌든 사람은 혼자 살지 않을 바에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내 맘 같이‘ 좋은 사람들만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유유상종은 그래서 생기는 것 같다. 좋은 사람이란 내 맘 같은 사람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나쁘다고 공격을 받거나 자책을 할 뿐이다. 자책을 하는 자체가 본질을 부정하는 평판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자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나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있다. 그런데 나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도 주위에 친한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서로에게 호감이 있기 때문에 엮이지 말아야 할 사람들의 주위에도 사람이란 것이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어떤 사람에게는 나쁜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다. 가령, 운전을 하면서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키다가도 상황에 따라 잠시 딴 생각을 하거나 한눈을 팔아서 크고 작은 범법을 저지를 수 있다. 혹은 누구에게나 친절하다가도 기분이 나빴기 때문에 그날만큼은 불친절한 모습의 나를 어떤 사람은 첫 인상으로 ‘엮이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 느낄 수 있다. 정말로 그런 사람은 하는 일도 상식 밖의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정말 엮이지 말아야 할 사람의 유형을 크게 분류하자면 두어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유형으로는 기질 상으로 고약한 사람이다. 쉽게 말하자면 날 때부터 고약한 성격의 DNA가 몰렸다는 뜻이다. 이러한 유형은 태생이 고약해도 어릴 때 내 멋대로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따끔한 훈계, 즉 인성교육을 제대로 꾸준히 받는다면 어느 정도 그 성격이 좋은 방향으로 쓰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내 성질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인성이 굳어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된다.
두 번째로는 후천적인 경우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첫 번째 경우는 대부분 어릴 때 말썽을 부리거나 하면 부모로부터 야단을 맞고 자라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라면서 고쳐지기도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고쳐지기가 힘들다. 자기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본인의 마음과 행동이 다르고 본인이 하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떠맡기려는 비겁함이 숨어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일단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어떻게 취급할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피해의식의 경중에 따라 다르지만 심한 경우, 남에 대해 좋게 평하는 법이 없으며, 지켜주고 보호해주어야 할 위치에 있어도 오히려 상대방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을 애써 드러내려하지만 그 속마음이 이미 드러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무시를 받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들과 좋게좋게 지내다가도 어떠한 계기로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싶으면 벌거벗은 모습을 보인 사람 마냥 이전에 알던 그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해버린다. 오히려 자신의 패를 모두 들키면서 사는 이를 상대할 때보다 좀 더 황당한 일을 하게 된다. 실수는 자신이 저질러놓고 이를 상대측에 뒤집어씌움으로써 자신의 실수나 모자람에 대한 증거를 인멸하려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엮이지 말아야 할 사람 혹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내면의 자신의 처지가 그야말로 가난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남을 밟아야 내가 올라간다는 출세 지향적 심리를 갖고 있다. 그래서 남에게는 부정적이고 자신은 늘 옳다는 주의로 주위를 각인시키느라 거짓말이나 와해를 주저하지 않음을 발견한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은 마음이 삐뚤어져 있기 때문에 섣불리 훈계를 하지 말고 일단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상식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다면 애초부터 방어막을 치고 상대를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마감하려는 당일, 지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문자를 받았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심령이 가난한 것과 마음이 가난한 것과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엮이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고 한 것에 대해 의아해 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을 자신이 자각하는지 못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듯하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오히려 도움을 청하고 부족함을 메우려 늘 배우는 자세에 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 마치 가난이 수치스러워 남에게 부잣집 자식인 것처럼 어설프게 거만한 사람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부정하고 아는 척 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실망을 겪은 사람 중에는 상대방이 만만하게 보지 못 하도록 처음부터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이 더러 있다. 흔히 ‘츤데레’라 불리는 유형인데, 오히려 어렵게 대하도록 인상을 주는 것도 꽤 나쁘지 않다는 것을 늦은 나이에 깨달았다. 착하게만 보이는 것은 내 만족일지는 몰라도 오히려 평탄하게 사는 데는 걸림돌이 되는 듯한 이유는, 왜인지는 몰라도, 착한 사람을 보면 우습게 보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는 속담처럼, 마냥 좋게 대하면 그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조심스럽게 선을 지키는 이 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닌 당연한 권리라 여기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무례해지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형제라고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지레 겁을 먹고 미리 방어막을 치고 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모든 제스처들은 외부인들로부터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마치 적 앞에서 크게 보이려고 있는 힘껏 몸을 부풀리는 개구리나 복어같이 위장술을 부려야 내가 덜 다치기 때문이라는 서글픈 진실이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데도 인간은 날 때부터 선하다고 말 할 수 있을지, 내가 속한 공동체는 어떠한지 가만히 들여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나를 위해.(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