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7일 인쇄
2018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1월호 통권 503호 |2018년 8월 15일 수요일|
 

이달의 좌담

  보다 ‘전문적’이고 ‘무용’만을 위한 국립무용센터 탄생을 기대한다
   2017 춤계 결산


 




박민경 (朴玟京 / 춤평론)
심정민 (沈廷玟 / 춤평론)
정기헌 (鄭基憲 / 춤평론)
조은경 (曺恩慶 / 본지 주간) - 사회




쇄신과 새로움에 대한 기대로 힘차게 움직였던 한 해
조은경 _ 안녕하세요. 오늘 한국춤평론가회 회원분들과 올해 춤계를 결산하는 좌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11~12월에 주요 춤계 페스티벌과 공연이 몰려 있어요. 연말이면 으레 있는 송년회 시상식 등의 행사에 더해 요즘 우리 무용계가 무척이나 북적대고 한편으론 활기차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바쁘신 와중에 의무적으로 많은 작품들을 보셨을텐데 먼저 자유롭게 올해 무용계의 가장 특징적인 이슈나 화제가 된 것으로 시작해서 작품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정리해보겠습니다.
심정민 _ 무용계 구조적 면에서의 변동을 먼저 살펴보면, 올해 제일 큰 변화는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이 12년 만에 교체가 된 것입니다. 조남규 이사장이 출사표를 던지면서 우선적으로 한국무용협회를 쇄신하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한국무용협회의 연간 사업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전반기에는 주로 젊은 무용가들을 위한 기획공연이나 각종 콩쿠르가 많아요. 그렇다보니 여기에 관계된 사람들 외에는 무용계 대다수가 쇄신의 의지를 어떻게 표명하는지는 알 수 없었죠. 그래서 후반기에 「서울무용제」나 「대한민국무용대상」을 많은 이들이 지켜보았습니다. 「서울무용제」와 「대한민국무용대상」을 보면, 예년에 비해서 출품작의 수준이 월등히 좋아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동시대적인 춤 추세에 반 발자국이라도 가까워진 점은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현장을 지켜본 결과 심의 공정성을 위해 무척 노력한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었습니다. 폭넓은 심사위원 구성이라든가, 즉각적인 점수 수거와 합산이라든가, 심사위원별 점수 공개라든가 등을 통해서요. 그래서인지 「대한민국무용대상」 시상식을 보면 근 몇 년 사이에 가장 다양한 무용인과 관객층이 들어섰습니다. 특히 이전의 「대한민국무용대상」 시상식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무용가들까지 왔더군요. “웬 일이시냐”고 물으니,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왔다”고 하더군요. 정말로 공정하게 진행한다면 다음에 자신도 출품할 의향이 있음을 넌지시 말하면서요. 공정성을 통해 무용계의 신뢰를 회복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전에 특정 계파에서 「대한민국무용대상」에 출품하거나 수상하는 무용가들의 퍼센티지가 높았던데 비해서 올해는 좀 더 많은 계파를 아우르거나 탈(脫)계파를 하고자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제 첫발을 내딛은 거라서 당장 어떤 대대적이거나 가시적인 성과를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신뢰 회복을 통해 한국무용협회의 권위와 위상을 높여가려면 이러한 쇄신의 노력이 중장기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냥 약간의 제스처만 취하다가 2~3년 후에 예전과 같아진다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쇄신을 단행하기 위해 칼을 뽑았으면, 임기 말까지 그리고 후임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꾸준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조은경 _ 한국무용협회가 진행하는 여러 행사가 있지만, 「서울무용제」는 우리 무용계의 새로운 창작 작품, 그 해의 가장 기념할 만한 작품의 산실로 춤계의 기대가 무척 큽니다. 새로운 경선심사제의 도입과 각 협동조합 등 여러 단체의 동반축제, 춤계 외부의 일반 관객의 호응과 확보 등 달라진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올해 아쉬운 것은 경연참가작이 줄어든 점입니다. 예술성과 축제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랬다고 이해는 합니다. 거액의 상금을 내걸고 화제성과 주목도가 높았던 사전축제 ‘4인 백조 페스티발’ 등 일반인들에게 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신경을 쓰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정작 무용제 경선 작품은 여섯 밖에 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작품상도 대상 없는 우수상에 그치고 말았어요. 좀 더 많은 수의 작품을 경선에 올리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자 「서울무용제」 성패의 관건이라고 생각됩니다.

소외되었던 독립무용가들을 아우르고 있어
심정민 _ 그동안 한국무용협회에 대한 무용가들의 불신이 생각보다 깊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바뀐다고 해도 말뿐이지 실제로 개혁을 단행할까 의구심을 가진 거죠. 그러니까 괜히 출품했다가 망신만 당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유력한 무용가들이 관망하면서 제대로 하는지를 확인한 겁니다.
올해 한국무용협회가 한 고무적인 일 중에 하나가 그동안 소외되었던 독립무용가들을 다수 아우르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발레에 이어 올해 현대무용과 한국무용에서도 협동조합이 만들어졌으며 전통무용 분야도 준비 중으로 압니다. 「서울무용제」 사전행사에서 네 분야의 협동조합 공연을 연달아 마련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독립무용가들을 다수 아우르는 효과를 낸 것이지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창작 작품을 심의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대한민국무용대상」을 보면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점수를 매기고 합산을 하는 방식이에요. 물론 사전 및 사후 단합을 차단하고 심의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취지에서는 좋은데, 사실 이러한 방식은 실기 콩쿠르에나 적용할 수 있는 거예요. 실기 콩쿠르에서는 기량에 집중하여 심의하여 버튼을 누르면 되니까 가능한 것이죠. 한편 창작 작품의 경우에는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척 난해하거나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은 처음에 봤을 때는 재미없고 끌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으로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에서는 지금과 같이 순간적으로 점수를 주는 방식은 적합하지 않다고 봅니다. 게다가 「대한민국무용대상」이 올해 본선에서는 10분 정도, 결선에서는 30분 정도의 실연을 보고 즉각적으로 채점을 했는데 이러한 시스템이 적합한 작품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죠. 작품 그 자체의 예술적 가치나 완성도 혹은 창의성과는 무관하게요. 사실상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올해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 드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위대한 조련사』 같은 작품은 출품조차 할 수 없고 뽑힐 수도 없는 겁니다. 쇄신을 통해 공정성, 신뢰성 회복에 신경 쓰는 건 좋은데, 이를 창작의 특성과 어떻게 균형을 맞춰가야 할지 많이 고민해봐야 할듯합니다.
박민경 _ 지난봄에도 평론가들 좌담에서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교체’가 제일 먼저 나온 이야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저 그랬는데, 춤계에서는 새로운 바람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듯해요. 그만큼 답답함이 컸었는데, 변화에 대한 무용가들의 요구가 이사장 교체로 가시화되었다고 봅니다. 새 이사장 체제의 한국무용협회 사업 중 후반기에 있었던 「서울무용제」와 「대한민국무용대상」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준비부족이었다는 것이 제 판단이고요, 내년에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대부분의 무용행사들이 현재 광범위하게 대중화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에 나름의 고민이 있어요. 그 방향에서 시민축제 성격의 행사를 요구하는 지원사업에 들어갈 경우 창작경연대회의 의미가 상실되기 쉬운데, 「서울무용제」가 그런 경우일 것입니다. 「대한민국무용대상」은 어느덧 10년 되었는데, 1년 간 공연된 작품 중 예술성이 뛰어난 최고 작품에게 대통령상을 수상한다는 취지로 시작되었습니다. 춤계에서 운영방식에 대해 불만이 컸는데, 그동안 개선이 없었어요. 그래서 권위도 추락하고 지원금도 대폭 삭감되었으며 일개 협회 사업으로 전락해버렸죠. 대통령상이 아니라 협회이사장상이 옳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심사방식을 전폭적으로 바꿨는데, 특히 심정민 선생이 지적한 부분은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이 행사가 결정적으로 실패한 원인이라고 봅니다. 본선, 준결선, 결선까지 모두 관람했는데, 총체적으로 문제가 좀 컸습니다.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심사방식을 바꾼 것이 아니라 심사의 편의를 위한 방식처럼 보였어요. 「서울무용제」보다 「대한민국무용대상」이 오히려 경연대회 성격이 되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이 사업이 한국무용협회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협회를 넘어서 별도의 조직위나 운영위가 설립되어서 관리가 되어야 본래의 취지를 살리고 의미있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봐요. 결론적으로 신뢰할 수준은 아니었어요.
심정민 _ 아닙니다. 신뢰 회복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봅니다.
정기헌 _ 보완을 해야죠. 저는 무용 사회의 구조가 변할 수밖에 없고, 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올해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는 인구가 점점 줄고, 무용에 지원하는 젊은 세대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용에 도전하는 새로운 인재가 들어오기 어려운 구조죠. 전문 무용인으로 육성되는 인구도 계속 줄고 있어요. 그 결과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올해 본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완성도가 높은 편이었습니다. 이것은 좋은 작품을 생산하는 무용가들은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무용가들의 도태되기 마련인데 그 속도가 꽤 빠르게 무용사회에 전반에 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 올해 느낀 점입니다. 대체로 위기와 함께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고 발전적으로 전개되는데 지금의 사회환경, 예술환경의 위축된 상황은 꽤 오래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움직임이 만들어 지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재능있는 무용가들을 제대로 성장시키고자하는 무용계 전반에 걸친 공공의 의식이 필요
심정민 _ 우리 무용계는 약간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는데, 현장적 마인드와 교육적 마인드가 자꾸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무용 선진국의 경우 현장 위주이기 때문에 피라미드 구조의 예술 생태계에서 천재를 걸러내고 키우는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약육강식을 통해 훌륭한 무용가들은 피라미드 맨 위로 순식간에 올라가고 그렇지 못한 무용가들은 아래쪽에 계속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 무용계의 경우는 이러한 현장적인 예술 생태계가 잘 조성되어 있지 못하다보니 가장 손해를 보는 부류가 재능있고 역량있는 독립무용가들입니다. 교육적 마인드라는 것이 좀 부족해도 심성을 살피면서 기회를 주고 도움을 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이 현장적 마인드와는 매우 다른 부분입니다.
사실상, 지금 대학 무용과가 많이 없어졌고 또 없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학 구조조정, 취업률 압박, 교수 평가뿐 아니라 학령인구 감소나 무용지망생 하락 등이 함께 버무려져서 상당히 어렵고 난감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젠 1980~1990년대처럼 대학 무용과의 절대적인 주도나 기여를 바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현장 중심의 실제적인 학습과 훈련이 필요한 실정인 것이죠. 이를테면 국립무용센터 건립을 통해 실제적인 학습과 훈련을 통해 경쟁력있는 무용가들을 배출함으로써 보다 생산적인 무용 현장을 조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2005년에 등단했는데 당시 다수의 재능있는 무용가들이 진지하게 컨템포러리댄스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러한 무용가들을 제대로 성장시키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우리 무용계가 반성해야 합니다. 나름대로 평론가로서 노력했다고 하나 혼자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무용계 전반에 걸쳐 공공의 의식이 필요합니다. 위에 국립무용센터 건립에 대해서도 언급했지만 그냥 만든다고 능수가 아니라 어떻게 전문화, 분업화, 선진화된 시스템을 갖추고 운영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블랙리스트 사건과 문화예술위원회의 쇄신
박민경 _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사실 올해만의 일은 아니에요. 춤계의 침체와 위축은 몇 년 동안 지속되고, 그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계속 지적했던 문제입니다. 다만, 올해는 새 정부 출범이라는 빅이슈가 있어서 한 번 더 이야기가 되었죠. 상반기에 평론가 좌담을 했을 때가 대선 전이었어요. 그동안 너무 답답했던 나머지 새 정부에 대한 기대를 크게 보였던 기억이 나네요. 후반기 변화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2017년이 우리 무용사회 변동의 해가 될 거라고 이야기를 했죠. 그런데 막상 한 해가 지나고 보니 변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문화부가 아무런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부가 직접 관련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지시대로 했다는 공무원들이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있는 한 해결이 더딜 수밖에 없는데, 새로 임명된 문화부 장관이 개혁의 의지가 있는지 그마저 의심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지금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름 그대로 문화-체육-관광의 집합체인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올인하고 있어서 공연예술계의 문제는 안중에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평창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겨우 뭔가 정책이 가시화되지 않을까 전망해보고, 문재인정부 출범 1년 정도 되는 내년 5월쯤이면 새로운 변화가 있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문화예술위원회거든요.
조은경 _ 오랫동안 위원장 자리가 공석이었다가 최근에 위원회가 구성됐죠?
박민경 _ 그저 공석인 위원장을 비롯해 위원들을 임명한 정도입니다. 임기가 남았던 무용위원은 변동이 없고요. 무슨 변화라고 할 것도 없는 수준이어서 현장에서는 기대보다 실망이 큰 것 같습니다. 지난 블랙리스트 사건 때문에 문화예술위원회는 존립 자체가 문제일 정도로 심각한 사안입니다. 그런데 유야무야 넘어가려 한다면 새 정부의 ‘적폐청산’이 진정성 없는 구호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큽니다. 문화예술위원회가 현장 예술가들을 대변하지 못하고 정권의 뜻에 따라 예술가들을 이용하는 창구로 존재하는 한 이 기구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예술을 지원하지 않고 오히려 파괴하는 기관은 필요없으니까요. 그래서 새 정부가 이 기구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죠. 거기서 예술지원정책의 방향이 드러날 것이라고 봅니다. 블랙리스트 사건을 해결하면서 예술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가 관건이에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닌 만큼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좀 더 속도를 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현장의 곤경이 너무 크니까요.
정기헌 _ 붙여서 이야기하자면 이미 작년도에 짠 예산이 올한해 그대로 집행되니 정부가 바뀌었어도 해당 연도에 뭔가 변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리고 동계올림픽은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처리해야 하니 모든 예산과 신경이 쏠려있겠지요. 새 정부가 순수예술에 특별한 예술적 지향이 없는한 정부가 바뀌어도 무용사회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공공 지원기관의 독립성과 자율권 보장이 관건
심정민 _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문화체육관광부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든, 서울문화재단이든, 예술경영지원센터든 간에 무용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공공 지원기관을 살펴보면, 독립성과 자율권이 너무 약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위에서 정책기조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가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성급히 짜야 하니까 상당히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러다보니 모든 게 조금씩 미뤄지고 미뤄져서는 현장에서는 많은 사업이 하반기에 몰리는 경향이 생깁니다. 올해의 경우 11월에 공연수가 엄청났으며 12월까지도 여파가 있었습니다.
박민경 _ 지난 정권에서 통합되었던 기관들이 다시 독립적인 기구로 거듭나야 한다고 봅니다. 몸집이 큰 기관은 빠르게 변하는 현장의 속도에 대응을 못하죠. 특히 공연계는 발빠른 대책을 많이 필요로 하는데, 때늦은 반영이 쓸모없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뒤늦게나마 필요한 대책들이나 요구들이 정책적으로 실현되는 경우도 거의 없고요. 그러한 것들이 춤을 비롯해 공연예술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심정민 _ 윗선에서 예술관련 공공 지원기관에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기본적인 관리 및 감독을 하는 식으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공 지원기관 측에서 항상 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죠. 공공 지원기관 자체 내에서도 독립성과 자율성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직원의 대부분은 성실하게 업무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소수는 위에서 하달되는 지시 사항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든가, 아니면 불필요할 정도로 위쪽의 기분을 맞추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나칠 경우 누구누구의 사람이나 부인까지 챙기기도 하고요. 이러한 소수의 그릇된 행동이 결국 공공 지원기관의 전체 분위기를 훼손시킬 수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도 해당 기관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낳을 수 있으므로 지양해야 합니다.
정기헌 _ 정부에서 임명하고 국가에서 관여하는 산하기관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늘 있었습니다. 물론 정부에서 책임지고 할 일도 있겠지만, 관계 부처에서 후보자를 올리면 위에서 결정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 인사 문제의 잡음과 전문성 시비는 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화예술 분야는 경제, 건설, 산업 분야에 비해 예산규모가 작고 경기에 민감함을 타지 않으니 ‘누구의 동생이다, 누구 부인이다’, 이런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실정인거죠. 여기에 평창 올림픽은 전 정권에서 책정했던 거대비용들은 이미 다 집행이 되었고 나머지 부분으로 문화행사를 채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급하게 행사들이 준비되고 있고 보통의 문화 행사에 지원되는 예산보다는 훨씬 많은 비용인데 졸속으로 집행되어서 좋은 작품 하나 남지 않는 공연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박민경 _ 그러니까 결국 본래의 존립이유, 예술을 억압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고 정부시책을 하달받는 식의 업무에만 몰두하는 문화예술위원회는 없어져야 한다는 말씀이죠?
정기헌 _ 그거랑은 별개로요.
심정민 _ 그건 아니죠.
박민경 _ 제 말은, 문예진흥원에서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된 근본적인 이유가 자율성이었는데 아직까지도 그게 지켜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시겠지만, 노무현정부 때 문화예술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그때 취지가 자율적인 기구의 설립이었어요.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예술정책을 예술가들 스스로 수립하고 실행하려는 목적을 이상으로 가졌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굉장히 혼란스러운 과정을 거쳤고, 시쳇말로 밥그릇싸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다툼도 많았습니다. 거기에 좌파 예술가니 뭐니 해서 이념적인 것까지 뒤섞어서 전쟁터를 방불케 했어요. 문예진흥원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로 갈등이 첨예한 기구였습니다. 그런데 살아남은 것은 곧이어 이명박정부 시절, 소위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관료주의와 절충하는 방식으로 정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쪽짜리 기구가 되었지만, 어쨌든 급진성을 줄이는 대신 차근차근 천천히 나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가 그 걸음을 아주 뒤로 돌려보내는 우를 범해서 지금 사안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르코예술극장 등을 관리하던 한국공연예술센터도 해체되어 결국 극장도 문화예술위원회 산하로 들어가고, 공연예술자료원도 마찬가지고요. 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부 결속이 더 심화되었고요. 그 당시 명분이 효율성이었어요. 물론 행정적인, 즉 재정적인 효율성이었기 때문에 예술의 자유와 상관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그것이 결국 국가통제이지 않느냐는 비판이 컸습니다. 문화부가 문화예술계를 다 관리하겠다는 뜻이었지요. 그래서 블랙리스트도 가능했고요. 예술에 봉사하는 관련 기관들의 직원들이나 현장 예술가들이나 모두 황망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당장의 불이익이 너무 크고 내막도 잘 몰라서 저항을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겨우 ‘무용중심극장’을 마련했던 춤계가 춤전용극장의 꿈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도 그런 통폐합의 과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겪은 일들을 다 기억해야 해요. 잊어버리거나 모르고 있으면, 즉 마치 남에게 들은 것처럼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하는 식으로 반응한다면 우리는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될 거예요. 이런 문제에 있어서 원론적인 이야기보다 핵심을 정확하게 짚고 비판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령 비판이 극단적일지라도 방법은 항상 현실적인 타협지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변화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강도높은 비판이 더 유용하기도 합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발언 같은 소극적인 요구만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어요. 새 정부가 출범한 지금, 문화예술위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센 자극이 필요합니다.

‘무용중심극장’을 마련했던 춤계가 춤전용극장의 꿈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도 그런 통폐합의 과정에서 일어난 일
심정민 _ 예술관련 공공 지원사업에서 심사위원을 구성할 때 지나친 코드 인사는 지양해야 합니다. 심사위원이라면 전문성, 공성정, 현장성을 고루 갖추어야 하기 마련인데 모든 부분에 부족한데도 지원사업의 심의를 상당히 많이 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또한 지원프로그램을 짜는 단계부터 입맛에 맞는 일부의 의견을 보편화하여 짜다보니 불필요한 지원사업은 확대되고 정작 필요한 지원사업은 축소되는 경우를 왕왕 봤습니다. 예술관련 공공 지원사업은 그것을 만드는 기관이나 위원의 입맛이 아닌 예술과 예술가에게 혜택이 가는 쪽으로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 훌륭한 예술가와 예술작품이 나온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성과인 것이죠.
박민경 _ 지금에 와서는 의심을 강하게 받는 거죠. 전문가 아닌 사람이 심사를 하거나 자문을 해서 불필요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불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비전문가로 구성한 게 아니냐는 그런 것 말이에요. 그러니 문화예술위원회가 얼마나 큰 불신 속에 있는지, 비판의 목소리를 좀 더 크게 들을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단순히 비난으로 흘려보낼 일이 아니에요.
조은경 _ 지금 공공 지원의 핵심은 누구나 춤을 추고, 무용가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맞춰져 있다고 봐요. 서울문화재단의 경우도 새로운 본부가 하나 만들어졌어요. 한정된 예산에서 그 분야와 지원을 나눠쓰는 상황이 되겠지요.
심정민 _ 세계적으로 ‘시민을 위한 예술’이나 ‘시민 참여 예술’처럼 공공 예술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만, 우리나라처럼 지나치게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는 위험하다고 봅니다. 아마추어 행사에는 몇 천 만원씩 떡하니 지원하면서 정작 고군분투하는 전문무용가들의 지원금은 삭감하는 등의 경우도 있습니다. 더욱이 아마추어 공연의 경우 구마다 있는 구립극장이나 회관에서 수용 가능하고 더 적합한데도 굳이 아르코예술극장 같은데서 대관을 해주거나 하는 것은 재고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복합공연장 시설인 링컨센터를 보더라도 시민의 접근성이 좋은 야외무대에서 하는 공연과 메트로폴리탄오페라하우스나 뉴욕주립극장 같은 메인 극장에서 하는 공연이 질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그 시대에 예술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이는 전문 예술가이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영향력을 간과하여 지원을 소홀이 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술의 방향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겁니다. 예술 지원의 중심은 예술가들의 활동을 고취시키는 것으로 잡고 이러한 예술가들을 활용하여 공공 예술을 보다 수준있고 다양하고 풍성하게 펼쳐가는 것이 좋겠죠.
우리 시민이 영화를 선택하여 관람하는 실태를 살펴보면 보는 수준이 상당함으로 알 수 있습니다. 무용 역시 좋은 작품을 향유하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여 시민의 보는 눈을 향상시키는 쪽으로 이끄는 것이 현명하다고 봅니다. 실제로 세계적인 무용 강국에서는 이러한 식으로 일반 관객을 끌어들이곤 합니다.

예술 지원의 중심은 예술가들의 활동을 고취시키는 것으로 잡고 이러한 예술가들을 활용하여 공공 예술을 보다 수준있고 다양하게 펼쳐야
박민경 _ 올해 아마추어 무용공연이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진행된 게 있나요?
심정민 _ 지난 몇 년간의 이야기이고요, 올해 제자리를 찾아간 점은 고무적입니다. 요즘 「찾아가는 공연」이라든가 「문화 향수 행사」라든가 「시민 교육 프로그램」이라든가 등등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프로그램이 상당히 많아졌고 지원금도 상당하거나 적어도 짭짭한 편입니다. 반면 창작 지원프로그램의 경쟁이 치열하고 지원액수도 넉넉한 편이 아니다보니 영리한 무용가들을 중심으로 부수적인 지원프로그램에 많이들 신경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용가들이 단체 운영을 위해 이렇게 부수적인 활동에 몰두하다보면 분명 잃는 거도 있거든요. 창작의 집중력이나 완성도는 확실하게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수적인 지원프로그램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로서의 활동을 계속해나가려면 무엇이 주이고 부인지를 냉정하게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허리세대 무용가들 중에서 한창 돈 벌고 창작하려고 보니 전성기의 빛을 다 잃어버리고 자위적인 작품에 스스로만 만족하기도 합니다. 무용계가 생각보다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도태되면 회복하기가 매우 힘들거나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죠. 무용계든 지원기관이든 재능있고 역량있는 무용가들의 경우에는 좀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뒤받쳐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문화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에 의한 문화’를 강조
박민경 _ 제가 미학 논문을 한 편 구상 중인데, 지금 이 문제와 관련 있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현대 미학의 어떤 관점이 ‘문화민주주의’라는 문화정책의 기조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요. 예전에는 문화정책이 소위 고급문화라고 말하는 예술을 중심으로 예술진흥에 집중했는데, 1990년대부터 확실히 그 기조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도 서구의 영향을 받아 현재 따라가고 있는 추세죠. 간단히 말하면 예전에는 문화정책이 ‘모든 사람을 위한 문화’였다면, 문화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에 의한 문화’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수 엘리트 중심의 고급한 예술을 지원하고 그 결과물을 모든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했던 문화예술정책이 누구나 창작을 하고 그 과정으로써 소통하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문화민주주의는 문화 개념의 광범위한 확장, 문화다양성의 인정, 효과적인 사회통합 수단의 요구 등 여러 내용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지금 과거와 달라진 우리의 문화정책은 사회복지의 의미와도 가깝게 있는 편입니다.
여기서 저의 문제는 예술입니다. 패션, 게임, 음식, 자동차, 관광 등 모든 생활이 다 문화이고, 또 누구나 다 예술가라면 전문분야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라는 의문이 들겠죠. 제 논문의 주제가 ‘예술의 자율성’을 다시 묻는 것이라서, 이 물음과 관련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문화정책의 방향이 시민의 삶에 밀착되고 소외와 배제 없이 누구나 다 예술에 참여한다는 것이라고 합시다. 이는 창작의 주체를 전문예술인에서 시민 일반으로 확장하고, 또한 향유자 역시 창작자와 분리되지 않고 누구나(창작자 본인을 포함해서)로 설정하면서 ‘내가 만들고 내가 즐긴다’ 혹은 ‘나는 만드는 것을 즐긴다’를 의미하면서 예술행위의 즐거움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전문예술가와 일반인이 분리되어 각각 창작과 수용의 측면에 서 있었다면 이제는 그 분리가 없어지는 것이죠. 그렇다면 문화정책은 예술의 자율성을 침해하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하나의 문제제기입니다.
다시 무용지원의 문제로 돌아와서, 예술지원의 기류가 바뀌는 것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미국의 경우 원래부터 민간에서 지원하는 부분이 큰 나라여서 공공지원에 대해 늘 찬반의견이 첨예합니다. 반면 독일의 경우는 예술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것을 국가의 의무로 인식하기 때문에 공적 지원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왔고, 또 공공성의 문제를 미국과 좀 다르게 해석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문화정책 연구에서 이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지 않은데, 혼선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국가예산의 편성이 공공성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할 때, 예술에 공공성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같은 문제입니다. 독일의 경우 예술지원 방향을 투 트랙으로 설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민에 의한 예술과 전문예술을 나누는 것이죠. 전문예술 지원은 전통적으로 해오던 정책을 계승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시민들이 폭넓게 예술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화분야의 지원을 확장하는 것으로 봅니다. 후자가 새로 첨가된 셈이죠. 저도 이러한 전략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우리의 문제는, 시민지원은 확장하면서 전문무용지원을 강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서울시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지금 우리의 문제는, 시민지원은 확장하면서 전문무용지원을 강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서울시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조은경 _ ‘문화 하겠다’와 ‘예술 하겠다’가 대조적인 성격을 한 마디로 잘 표현해준다고 봅니다. 모든 시민들에게 예술 참여와 향유를 유도하는 거죠.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그렇게 문화 기획 쪽으로 가는 게 안타까운데요. 좋은 논문 쓰시길 바랍니다.
박민경 _ 예술분야에서는 박원순 시장의 문화정책에 불만이 있습니다. 비주류, 아마추어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전문성을 도외시하는 신호가 강하니까요. 특히 서울문화재단이 서울시 홍보기관처럼 보인다는 것도 문제고요. 서울시 문화정책이 예술에 대한 식견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거셉니다. 특히 전문과 비전문을 개념없이 뒤섞어 놓고 암암리에 서울시정 홍보에 예술을 이용하는 방침이요. 서울시의 정책들을 모두 시민적인 것, 문화적인 것으로 포장하는 것이죠. 서울무용센터 설립에 기대가 굉장히 컸었는데, 제대로 방향을 못 잡고 있습니다.
정기헌 _ 시민들이 향유하고 즐기고, 예술적 체험을 할 수 있는 예산도 필요하긴 한데, 두루뭉술하게 문화, 예술, 생활 이런 단어들이 섞여서 이해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그리고 예술적 지원의 농도가 너무 낮아요. 제가 알기에는 무용예술 분야에서 어떤 작가에게 3~5년 정도 해주는 지원은 없잖아요. 미술계를 보면 정부에서 지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대 갤러리에서 3년 간 작업실을 지원해줘서 안정적인 작품 활동을 지원해 주곤 하잖아요.
어떤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 나이가 들면서 깊어지고, 패턴도 바뀌지만, 어떤 시즌에 굉장히 집해서 작품 할 수 있을 때 한 5년 정도 공간이 제공된다면 안정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겠죠. 아까 심 선생님 말씀하실 때 생각한 게 있는데, 2005~2006년, 또는 어떤 시즌에 굉장히 좋은 무용가들이 나오는데, 그 당시에 몇 군데 행사 나가다가 말고 거의 다 사라지잖아요. 그런데 그때 당시에 제도가 기술적으로 잘 준비되어서 3년, 5년 정도 어떤 사람을 지원했다면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박민경 _ 과거에 3년 지원 같은 다년간 지원하는 사업들이 있었고, 문화예술위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서울문화재단에서도 3년간 무용단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시행착오가 있었는데, 잘 되지 않아서 지금은 거의 사라졌고요. 공연장 매칭해서 지원하는 것이 그나마 장기지원에 해당될 것입니다. 문화예술위원회 설립 이후 지원사업들을 검토해보면 아마 시도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풍부합니다. 다만 대부분 실패해서 없어지고, 별다른 대책이 없으면 이름을 바꾸고 내용을 조금 변경해서 지속하고 있고요. 서울문화재단도 마찬가지예요. 공무원들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요, 사업기획들이 거기서 거기예요. 적은 예산에서 하다 보니, 3년간 지원할 단체나 무용가를 매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3년마다 하는 겁니다. 선발방식이나 심사기준이 엄격하지 않아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그런 상황이 빈번하고요. 더구나 다년간 수혜자가 1~2팀에 불과하다 보니 이래저래 불만도 있고요. 지원원칙과 잘 맞지 않은 부분도 있었던 걸로 압니다.
정기헌 _ 몰아주기가 된다는 거죠?
박민경 _ 좋은 기획들이 현장에 정착을 못했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매번 새로운 지원사업을 내놓는 것도 결국 공무원들의 업무여서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만, 이제는 디테일하지 않으면 시큰둥한 반응만을 불러올 뿐이에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가능하도록 해주는 것 외에 어떤 방법도 없다는 점입니다.

개개 창작자의 독창성, 고유성, 정체성을 뒷받침해주는 지원이어야
심정민 _ 요즘 틀을 짜놓고 거기에 맞추라는 식의 기획적인 지원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창작자가 100명이 있다면 100가지 창작의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예술에는 오리지널리티라 하여 독창성이 매우 중요시됩니다. 이는 남과는 다른 나만의 예술적 고유성이죠. 훌륭한 무용가라면 예외 없이 이러한 고유성을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지원프로그램 역시 각각의 창작자가 자기만의 창작을 펼칠 수 있도록 뒤받쳐줘야지 이런 식으로 하라는 식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이런 지원프로그램에는 아무래도 베이스가 없고 그러니까 말을 잘 듣는 특히 젊은 무용가들이 많이 지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현재 젊은 무용가들이 여기저기 지원 혜택은 그 어느 세대보다 잘 받으면서도 정작 주목할 만한 예술성을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젊은 무용가들 사이에서도 진정으로 창작자로서 성장해가고 있다면 어떤 추세에 휩쓸리기보다 자기만의 사유와 탐구를 통해 예술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몰두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1990년대 중후반에 한국 컨템포러리댄스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안애순, 홍승엽, 안성수, 안은미가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였는데 이들은 예술적 스타일에 있어 제각각 상이하면서 견고합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요. 이러한 독창성, 고유성, 정체성이 제대로인 겁니다. 지원프로그램에서도 재능있고 역량있는 무용가를 잘 선정하여 지원금과 함께 창작의 독립성과 자율권을 준다면 그중에서 분명 기대이상의 성과를 내는 무용가가 나올 겁니다. 그런 식으로 무용가들을 추려서 성장시켜가야 하는 것이 정석이며 제대로인 겁니다.
박민경 _ 서울무용센터가 많은 기획을 내놓고 있는데, 아쉬운 점이 많아요. 핵심은 좋은 작품을 내놓는가, 그래서 안무가를 발굴했는가 하는 것인데, 그런 일에 집중하는 지원이 없어요. 그럴 거면 차라리 무용전용극장을 하나 설립해주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울무용센터 전신이 홍은예술창작센터였는데, 저는 서울무용센터가 춤창작의 기본으로서 공간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봤어요. 그 결론은 무용창작의 중심인 극장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예측했는데, 반대로 거리로 나가는 등 극장을 벗어나는 것을 장려하더군요(웃음).
정기헌 _ 좋은 작품, 좋은 결과가 만들어 지는 사례가 되지 못해 아쉬운 경우지요. 많은 독립 예술가들이 연습실조차 없어서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박민경 _ 지원사업들의 운영이 애초 취지대로 잘 되지 않고 그래서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 신뢰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요. 더구나 실력있는 중진 안무가들에 대한 지원이 다양하지 않고, 그들이 지원사업에 회의를 느끼면서 외면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면 사업은 더욱 더 성과가 없게 되고요. 악순환인 셈이죠. 안무가들의 불만은 지원사업이 갖는 상당한 제약들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각종 서류가 그런 것이고, 작업 외에 신경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아요. 행정의 간섭이 심하다는 거예요. 간섭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의 기획사업들은 작품까지 간섭하는 양상입니다. 그러니까 신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결과를 가져오고요. 쓸데없는 기획 그만두고 창작지원에만 신경쓰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창작지원금은 늘지 않고 있어요.
심정민 _ 위에서 언급했듯이 지원금과 함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주면서 결과물인 작품으로 평가를 하면 됩니다. 무용계에서 전문성, 인지도, 기여도가 떨어지는 몇몇의 의견을 일반화하여 지원프로그램에서 적용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일부 젊은 무용가를 위한 지원프로그램이 그렇다는 의미입니다만… 새 정부 들어 이러한 부분들은 재고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조은경 _ 서울문화재단도 문화기획자 양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심정민 _ 결과적으로 재능있고 역량있는 창작자를 키워내기 보다는 전문성, 인지도, 기여도가 떨어지는 일부 기획자. 드라마투르기, 이론가, 무용가인지를 띄어준 것 밖에는 안 됐거든요. 이런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무용계의 발전보다는 자기의 이익과 안위를 중요시하거나 자신의 직책을 상황에 따라 바꾼다는 겁니다. 어떤 경우라도 신뢰도가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용단체 역시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주어야
조은경 _ 이쯤에서 국공립단체들을 살펴보지요. 또 다른 문제가, 국립현대무용단의 경우는 아직도 이사진이 없죠.
심정민 _ 그것도 같은 맥락에서, 위에서 정책 기조가 어떻게 세워지는가에 따라 그에 맞는 지시 사항들을 계속 기다리고 있는 듯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예술관련 지원기관과 마찬가지로, 무용단체 역시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국립무용단체의 올해 사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부분이 두드러집니다. 우선 국립발레단에는 강수진 예술감독이 있지요. 무용에 전혀 관심이 없고 발레를 본 적이 없는 일반인조차 강수진은 알고 있습니다. 국민 발레리나가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을 맡아 발레를 좀 더 널리 알린 점은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티켓 파워도 발휘할 테고요. 다만 단체 운영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어왔으며 무엇보다도 새로운 레퍼토리 선별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현재 국내 모든 무용단체 중에서 가장 많은 공적 지원금을 받는 것으로 압니다만 월등히 뛰어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겁니다.
국립무용단은 극장장이 바뀌는 상황이라 다소 혼돈이나 정체 상태라고 보여집니다. 안호상 극장장이 물러나면서 한국무용계에서는 특히 중견 이상 원로를 중심으로 동시대적인 창작 경향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거세게 내면서 기존의 창작 형태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동시대적인 창작 경향을 한국무용가보다는 국내외 현대무용가, 의상디자이너, 작곡가 등 다른 장르와 분야의 예술가들을 통해 실현했던 것에 대한 반발일 겁니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다시 시대적 흐름을 거슬러 갈 수는 없는 만큼 동시대적인 창작을 할 수 있는 한국무용가를 발굴, 양성해나가야 합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새로운 예술감독으로 안성수를 맞이하였습니다. 이후 얻은 성과라면 김설진, 박순호, 김용걸 등 외부 창작자를 초빙한 기획공연들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는 겁니다. 물론 주요 레퍼토리 공연으로는 전임자인 홍승엽, 안애순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작품들을 올렸고요. 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는 (현대)무용계와의 소통에 소극적이지 않느냐는 문제제기가 있는 만큼 대외적인 교류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겁니다.
조은경 _ 국립극장 자체가 좋은 작품보다는 ‘관객 수 늘리기’로 목표를 잡고 있는 듯 해요. 창작자 양성 외면, 평론가들의 공연관람 제한, 전문지 홍보 무대처 등 거의 무용계와는 등 돌리고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박민경 _ 현재 국립무용단의 정체성은 안호상 전임 극장장의 뜻이 좀 반영된 것 같아요. 국립극장의 기획과 목적, 방향 등에 전속 단체들이 맞추는 것이죠. 그러니까 무용단을 안무가, 무용가가 이끄는 것이 아니라 연출가든 관료든 뭐가 됐든 극장장이 이끈다는 것입니다. 무용계와 등지는 방향도 얼마든지 가능하죠. 자문위원회 같은 제도를 만들어놓지만 들러리일 가능성도 크고요. 전문가들, 무용인들이 아무리 건의해도 반영이 안 되면 그게 들러리인 거죠. 표면적으로는 대중적인 작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연을 해야 한다고 정당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성과주의라는 공공기관에 대한 평가를 깔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극장의 성과를 위해 예술이 봉사하는 식이 되는 겁니다. 어떤 기관이 됐든 ‘장’들이 업적을 쌓는 데 열중인데, 아무래도 문화예술기관들은 예술에 직접 관련될 수밖에 없고 행정이나 경영과 반대편에 있는 예술 쪽에서 볼 때는 당연히 못마땅한 거죠. 좋은 작품으로 관객을 끌어모으는 것은 돈이 있으면 가능해요. 우수작품을 사오고 홍보마케팅을 활용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런 작품과 예술가를 키워내는 것은 어렵죠. 시간도 오래 걸리고 결과도 예측할 수 없어요. 성과주의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어서 해결이 어렵지만, 그 ‘성과’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방법을 찾을 수는 있겠죠. 가령 정치경제분야의 논리로 예술분야의 성과를 측정한다는 것을 반대할 수 있어요. 현재 극장장이 공석인데, 새 정부에서는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치경제분야의 논리로 예술분야의 성과를 측정한다는 것을 반대
심정민 _ 안호상 극장장의 원래 취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시대적인 창작 작품을 제작하겠다는 거죠. 처음에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한국무용가를 찾았겠지만 사실 한국무용계에서 동시대적인 창작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이가 별로 많지는 않거든요. 그렇다보니 다른 장르와 분야의 예술가를 불러들여 보다 획기적인 창작 작품을 제작하려 한 것이죠. 다만 다른 장르와 분야의 예술가를 불러들이는 것은 임시방편밖에 되지 못하며 결국은 해당 장르 그러니까 한국무용에서 창작자를 발굴, 양성해야 하는데 이를 간과한 측면이 있습니다.
박민경 _ 김현자 선생이 부임했을 때 이미 국립무용단은 신무용을 벗어났어요. 그게 2000년 초인데, 극장장의 뜻이 아니라 춤계의 뜻이었죠.
정기헌 _ 제가 덧붙여 얘기하면, 국립무용단은 그 조직이나 내부의 문제, 또 밖에서 오는 압력이 무척 커요. 이것이 바뀌긴 어렵다고 봅니다. 슈퍼파워를 가진 위대한 예술감독이 와서 정부와의 문제도 해결하고, 단원도 잘 이끌고, 좋은 작품까지 만들어내야 하는. 또 믿으면서 오래 기다려 주지 않으니 1~2년 안에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차곡차곡 쌓인 과오들이 실례를 저버린 거지요. 그래서 서울시무용단의 경우는 당연히 기대를 안 하는 단체가 되어버렸지요.
조은경 _ 국립무용단과 서울시무용단이 나란히 창작의 선두에 있었는데요.
심정민 _ 서울시무용단의 예술감독이 아직까지 선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한국무용계에서, 내부적으로 코드 인사를 심기 위해서 물밑작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동안 서울시무용단이 침체일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1990년대만 하더라도 거의 국립무용단과 어깨를 겨루면서 창작적 혁신은 더 인정받았단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되어버렸죠. 조속히 체계를 정비하여 쇄신과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니 위해서는 수장부터 빨리 뽑아야 하겠습니다.
박민경 _ 서울시무용단도 국립무용단과 사정이 거의 비슷해요. 서울시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이라는 기관 소속으로서 자율적인 예술활동이 불가능해요. 옛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춤현장의 중심자리에서 멀어진 지 오래되었어요. 살기 어려운 시대다 보니 공무원 마인드라고 할까요, 자리보전 외에 별 관심이 없어 보여요. 국립극장은 그나마 무용단을 대중화시키는 방향이라도 보였는데, 세종문화회관은 그조차도 못했어요. 가끔 공연은 보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공연평도 할 수 있는데, 할 말이 없습니다.
심정민 _ 시민들 수준이 낮다고 착각하면 안 되는 거죠. 우리나라 시민의 예술 향유 수준이 거의 세계적인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피나 바우쉬 공연이 만석 되는 거 보세요. 그녀의 작품이 보기 편하거나 쉬운 작품이 아님에도 기립박수가 나오기도 합니다. 훌륭한 작품을 알아보는 시민의 안목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시민의 눈과 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수준 이하의 작품을 대중적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민경 _ 사실 국립무용단과 서울시무용단, 두 무용단은 노조 문제가 있었어요.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그냥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죠. 제가 언젠가 골치 아프니까 그냥 ‘덮었다’고 표현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계속 남아 있기 때문에 단순히 예술감독, 상임안무가를 누구 임명하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단체의 체질을 바꾸어야 하는 좀 더 크고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셈인데, 몇 년 동안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서울시무용단의 경우 사정이 이 정도 되면 옛날에는 그냥 무용단 해체하라, 세종문화회관 사장 교체해라고 할 정도로 비판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을 정도로 관심 밖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예술작품을 두고 이야기할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자주 이야기했던 ‘직업으로서 춤’과 관련된 차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전국의 직업무용단과도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니까요.

지역 대학 무용과의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어진 만큼 지역 소재 직업무용단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어
조은경 _ 지방의 시도립무용단은 어떤가요? 감독이 가서 어쨌든 작품으로 승부를 낼 수 있는 구조 아닌가요?
박민경 _ 홍승엽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이 대구시립무용단에 부임해서 최근 임기를 마쳤죠. 그리고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이 현재 광주시립발레단에 있어요. 지역에서의 평가는 좀 비우호적인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교류뿐만 아니라 춤수준의 격차가 큰 서울과 지방의 교류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지역에서는 어떤 이질감을 더 강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지역정서라고 하나요, 서울-지방을 떠나 교류문제에 대해 우리 춤계 전체가 더 많이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심정민 _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서울에 있는 국·시립무용단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지역에 있는 국립, 시립, 도립 무용단의 역할이 현재로서 상당히 중요해졌습니다. 지역의 대학 무용과들이 급속하게 없어졌으며 지금도 없어지고 있습니다. 완전히 없어지지 않은 경우에도 대폭 축소되거나 주변의 전공과 통폐합되는 등 상당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이제 지역 대학 무용과의 역할을 거의 기대하기 힘들어진 만큼 지역 소재의 직업무용단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단순히 할당된 사업일정 이외에도 해당 지역 무용계와 무용가를 위한 기획공연을 마련할 수도 있겠구요.
박민경 _ 국립 단체에서 하나 더 짚고 넘어가자면, 국립발레단 문제입니다. 예정대로 강수진 예술감독이 재임했는데,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단원들을 안무가로 키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레퍼토리 확충이에요. 단원들이 안무를 하는 것은 좋은데, 발레단 외부로 눈을 돌려 춤계 전체를 봤을 때 발레창작 수준보다 더 낮다는 게 문제입니다. 단원 워크숍 같은 것을 정기공연으로 하는데, 약간 발레단의 홍보마케팅의 일환처럼 보입니다. 일종의 팬서비스 같은 것이죠. 일반관객이 좋아하는 무용수를 만날 기회를 좀 더 가깝게 만드는 기획인 셈이에요. 그래서 그 나름의 긍정적인 효과는 있는 것 같습니다.
레퍼토리 문제는, 강수진 감독이 좋아하고 또 잘 아는(그래서 훈련이 가능한) 스타일로 확장이 된 것은 맞습니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발레를 좋아하는 관객들도 많기 때문에 나름 발레단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시도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단원들이 이런 류의 작품에 좀 익숙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연기가 다 똑같아요. 춤을 다 똑같이 추고 있는 거예요. 물론 안무의 문제도 있죠. 하지만 [백조의 호수]도 무용수에 따라 성패가 갈리듯이, 무용수들의 작품해석 능력도 중요합니다. 발레테크닉, 안무동작을 어떻게 구사하느냐에 따라 공연의 질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기량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은 작품들이었지 않나 싶어요. 적어도 수석들이 제 이름을 갖는 스타로 성장할 수 있는 작품이 선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무용수가 두각을 나타나야 작품이 살아나는 것 아니겠어요? 이번에 스위스 취리히발레단의 크리스티안 슈푹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를 초연했는데, 우리에게 안무가도 낯선 편이고 원래 작품을 본 적이 없어서 평가가 약간 유보적입니다. 부정적인 평가에서 대부분 안무가 문제라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무용수의 문제도 있는 것 같거든요. 드라마발레라고 하는 것이 연극처럼 보는 성격이 있다 보니까 배우에게 집중하듯 무용수가 스토리를 어떻게 끌어가는가가 관건입니다.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이나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규모에서 다시 한 번 봤으면 좋겠네요.

김남진, 김설진, 김성한. 김용걸, 김윤수, 노정식, 박순호, 밝넝쿨, 안영준, 예효승, 이인수, 정현진, 정형일, 차진엽, 홍은주
조은경 _ ‘한국춤평론가회’에서 이번에 작품상을 뽑았잖아요. 그 이야기와 함께 작품 이야기를 한 번 나눠볼까요? 작품상 대상이 차진협의 『미인』이었죠. 문화비축기지에서 했던 작품이에요. 남자 연기상은 예효승 씨였고, 여자 연기상은 국립발레단의 김지영 씨였고요. 그리고 특별상은 강혜련 선생이 지역특별상은 장구보 씨가 받았어요. 작품상 수상에 관련해서 2017년의 춤경향과 무용계에 대해서 춤평론가 입장에서 한 번 짚어주셨으면 합니다.
심정민 _ 올해 굉장히 고무적인 현상 중에 하나가 허리세대 무용가들의 귀환이 두드러졌다는 겁니다. 이는 주요 지원과 극장에서 허리세대에서 기회를 폭넓게 제공함으로써 가능해졌다고 봅니다. 2010년 들어 신진들을 위한 지원과 대관이 일시적으로 많아졌는데 사실상 신진들은 검증을 통해 걸러져야 하는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곧바로 무용계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작품을 낼 수 있는 퍼센티지가 낮죠. 한편 허리세대는 이러한 검증과정을 몇 단계 거쳐 살아남은 무용가들이라는 점에서 훨씬 저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허리세대가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무용계 창작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합니다. 올해 활동했던 허리세대 중에서 생각나는 무용가로는 (가나다순으로) 김남진, 김설진, 김성한. 김용걸, 김윤수, 노정식, 박순호, 밝넝쿨, 안영준, 예효승, 이인수, 정현진, 정형일, 차진엽, 홍은주 등이 있습니다.
물론 허리세대라고 다 성공적인 활동을 펼친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시절을 거치면서 예술적 순수성을 잃어버리고는 일종의 직책을 의식한 실적쌓기용 공연을 펼치는 이도 있고, 여러 지원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거나 국내외 무대를 넘나드는 것에 만족하여 안주하는 이도 있어요. 무용계 현장이 의외로 냉정하여 집중력과 창작력이 흐트러진 무용가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많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래도록 창작 활동을 하고 싶다면 이에 대한 재고는 분명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기헌 _ 지금 말씀하신 허리 세대가 30대, 40대인가요?
심정민 _ 30대 말부터 50대 전반까지 정도 됩니다. 원로들의 수가 축적됨에 따라 허리세대 역시 나이 분포가 확장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정기헌 _ 저는 그들의 공연을 10여 년 전에 젊었을 때 보고, 한동안 작품을 보지 못하고 기억에서 끊겼다가 다시 최근에 봤는데요. 존재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박민경 _ 작품에 대해서 평론가들이 이야기한다는 것이, 누가 잘하고 못한다는 말보다는 어떤 작품이었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춤평론가상을 뽑을 때 매달 작품 리스트가 나오잖아요. 각자 평론가들마다 취향도 다르고, 작품을 보는 시각이 다르고, 게다가 무용가들을 보는 시각도 다 다르죠. 그렇지만 그 중에 어떤 것이 더 의미가 있는가를 우리가 상의해서 뽑는 거잖아요. 기준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작품상이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지, 단순히 이 작품이 저 작품보다 낫고 더 훌륭한 안무가다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특히 공연을 전부 챙겨보지 않은 저는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인데, 의미부여는 각자 하고 결론만 내야 해서 춤평론가상 수상작 선정자리가 항상 어려워요. 그냥, 그 기준을 만들어낸다는 데 개인적인 고충이 있다는 소회입니다(웃음).
2017년 작품상을 수상한 차진엽의 『미인』은 우리시대 문화를 가로지르는 큰 줄기인 ‘페미니즘’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컸습니다. 동시대 예술로서 춤이 살아있다고 느끼게 된 공연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게 현대무용이다’라는 기치를 되살리는 계기였다고 보는데, 대중화 압력에 엇비슷한 춤공연으로 연명하고 있는 가운데 현대무용이 죽지 않았다는 징후 같아서, 춤계에서는 뿌듯한 쾌거로 볼 만하죠. 발레부터 해서 춤공연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우리가 ‘현대무용’이라고 부르는 춤의 정신의 근간은 몸 해방과 여성 해방이라는 사회적 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잖아요? 모던댄스가 발레에 대한 움직임의 혁신으로 구분되지만, 바로 그 움직임의 혁신을 가져 온 의식의 전환이 해방, 즉 인간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페미니즘 논의가 무궁무진하고 성격과 방향도 다 달라서 서로 다른 수준의 논쟁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지만, 여성해방의 목표가 결국 인간해방 아니겠습니까? 사회운동의 거대한 물결에 현대무용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인상을 주는 공연이어서 의미가 깊습니다. 동시대 예술로서 현대무용이 그저 즐기는 춤, 한낱 보기 좋은 극장무대의 춤공연이라는 소극적이고 편협한 것이 되지 않게 했다고 봅니다. 이번 공연에서 정점에 이르렀다고 보지만,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실제로 차진엽의 작품들이 현대무용의 핵심에 항상 가깝게 있었거든요. 오랫동안 그는 작업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었는데, 춤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라고 보입니다. 이번 기회로 무용연구자들이 차진엽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네요.

차진엽의 『미인』은 우리시대 문화를 가로지르는 큰 줄기인 ‘페미니즘’과 연결되어 동시대 예술로서 춤이 살아있다고 느끼게 된 공연
조은경 _ 작품상 외에 본인이 올해 작품경향이나 특징적으로 말할 내용이 있으면 언급하고 넘어가시죠.
심정민 _ 차진엽은 『미인:MIIN』(10월 13-18일)이란 작품에서 문화비축기지라는 특이성을 지닌 공간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하여 제대로 된 장소특정용 공연을 펼쳤습니다. 이를 인정받아 한국춤평론가회 춤평론상 작품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밖에도 (가나다순으로) 김설진의 『볼레로 만들기』, 김윤수의 『다섯 명의 무용수를 위한 거문고 산조』, 박순호의 『경인』, 예효승의 『Voice of Acts』』, 이인수의 『The First Meet』, 정석순의 『아수라 발발타』, 정수동의 『터미널』, 정현진의 『언더스탠드』, 전미숙의 『바우』, 최성옥의 『카르미나 부라나 2017』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박민경 _ 저는 최근 들어 춤공연들을 보면서 그리고 잡지나 신문 혹은 온라인매체의 리뷰들을 읽으면서 춤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점점 더 공연을 보는 일반 관객들이 많아지고 있고, 공연관람 후기든 감상평이든 관무기든 다양한 형태의 글들도 등장하고요. 그런데 대부분 ‘공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데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연을 어떻게 봤다는 소감이나 무엇이 재미있었고 아쉬운 것은 무엇이었는지 하는 언급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을 한 편의 예술작품으로서 다루는 글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평론가들이 다루는 공연이 대부분 작품이기 때문에 우리가 편의상 구분하지 않고 모든 춤을 작품으로 간주하지만, 비전문가들은 그 구분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창작, 특히 신작만을 다루는 까닭도, 아무리 훌륭한 공연이어도 재연보다는 완성도가 떨어질지라도 초연을 더 가치있게 보는 까닭이 그런 데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레퍼토리 공연이 많고 창작이 어려워서 기존작을 재공연하는 경우가 많은데, 재공연 때 완성도가 높아지고 수정을 거쳐 초연 때보다 나아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신작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작품을 총체적으로 구성하는 요소들의 기본이 바뀌지 않는 한 같은 작품이죠. 만약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면 다른 작품이 되겠죠. 즉, 공연의 우수함과 작품성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춤」지에서 초연이 아니면 공연평을 싣지 않았습니다. ‘공연평’이란 곧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지난달에 유니버설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의 발레 공연에 대한 평을 쓰면서 조금 고민했어요. 이미 잘 알려진 작품이라 작품에 대한 평이 아니라 공연에 대한 평이었으니까요. 어떤 안무가가 작가의 위상을 갖느냐는 작품을 통해 판가름나고, 그래서 어떤 춤이 작품으로서 요소들을 갖추고 있는가를 평가하는 작업을 평론으로 부릅니다. 그런데 점점 더 초연이든 아니든 작품이든 아니든, 매번 공연 그 자체로 평가를 하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조은경 _ 재공연으로 완성도가 높아진다해도 공연의 우수함 즉 ‘공연’과 ‘작품성’은 분리해서 생각해야하지요. 창간 때부터 재구성이나 전통이 아닌 창작작품으로 안무작 초연이 우리 잡지 공연평의 대상인 것은 분명합니다.

평론의 대상으로 창작, 특히 신작만을 다루는 까닭
박민경 _ 국립무용단의 『향연』이 아무리 대성황을 이루고 올해 더 훌륭한 공연을 했더라도 전통춤의 재구성으로는 예술적 가치가 낮게 평가된다는 겁니다. 비록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무대장치도 없이 혼자서 춤추는 공연이, 홍보가 안 되어서 관객이 거의 없다고 해도 어떤 작품성을 갖추고 있다면 더 의미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재연들에 대한 평가가 배제되는 현상이 있고, 그래서 춤공연 현장 전체를 크게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 같은데 점점 더 심해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작품의 역사로 무용사를 다루면 당연히 신작 초연이 중요하지만 공연의 역사로 본다면 같은 작품일지라도 더 특이할 만한 해가 기록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춤의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이런 문제들이 좀 간과되고 있지 않나 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백조의 호수』도 매년 다르거든요. 레퍼토리도 매년 다르잖아요. 그런 게 공연의 역사라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를 살면서 어떤 점에 가장 포커스를 맞추고, 창작이라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서, 차진엽의 작품은 제가 보기에는 확실히 지난 시간들을 무시할 수 없어요. 그의 정신, 생각, 작품에 대한 관념이 굉장히 확고했다고 봐요.
‘퍼포밍 아트’라고 하니까 여러 장르들이 없어진 것 같지만, 그렇기 때문에 장르 얘기가 아니거든요. 우리가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한국 무용, 발레 뭐 이런 장르 얘기가 아니에요. 동시대의 어떤 문화 담론이나 시대사상과 어떻게 함께 가는가의 이야기에요. 우리 춤도 그렇게 가야만 동시대 예술로서 살 수 있는데요. 단순히 공연에서 춤을 훌륭하게 췄고, 사람들이 좀 더 좋아한다는 식으로 논의가 이뤄지는 건 조심해야 돼요. 왜냐하면 지금은 너무 많아지고 누구나 공연 판을 다 쓰고, 공연 보고 하잖아요.
춤평론가회의 작품상 선정과 관련해서 아직 논쟁이 될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지금은 해당이 안 되지만 미리 앞서서 생각을 해봤어요(웃음). 어쨌든 아직까지 「한국춤평론가상」은 훌륭한 재연일지라도 작품상 후보에 들어오지 못하니까요.

뮤지컬, 대중가요, 오페라, 연극 등에 모두 안무라는 타이틀을 넣을 수 있지만, 춤작품에서 안무가는 작가와 동격
정기헌 _ 제가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무용은 당연히 공연의 형태로 만나는데, 그 안에 작품성이 굉장히 뛰어나든지, 높든지 깊든지 그런 게 있겠죠. 그런데 작품성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안무라는 형태를 통해서 발견하고 판단하는 근거가 되지요. 그리고 여기에 예술가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담겨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 메시지를 구현하는 것도 안무를 통해서 발현되는 것이지요. 또 메시지 속에 핵심이 자기 성찰에 있는지, 아니면 동시대성의 고민에 있는지 제 각각이겠지요. 그리고 작품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자기 삶에 곱씹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따라 우리가 작품, 예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너무 바쁘고 정보가 많아서 서로 깊게 토론하고 되새길 시간이 없는 것이 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심정민 _ 무용가들이 안무를 할 때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게 예술적 사유와 탐구를 거쳤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기본 틀은 매우 좋은데 무언가 한두 부분이 결여된 작품들 많이 봅니다. 예를 들면 안무는 잘 짰는데 지나치게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상을 주기 어려운 경우도 올해 있었습니다. 역시 가장 빈번한 케이스는 용두사미로서, 주제 의식을 작품의 마지막까지 끌고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십년 전 뉴욕에서 사춘기 소녀와 40대 엄마의 듀엣을 본적이 있습니다. 춤 자체는 아마추어적이었는데 주제를 마지막까지 끌어가는 힘은 흔들림이 없더군요. 프로페셔널이 아님에도 주제 의식이 분명하다는 점은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부분입니다. 기본적으로 작품을 만든다고 한다면 어떻게 시작하여 흐름을 유지하다가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에 대한 의식을 분명히 한 후 실행에 착수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박민경 _ 문병남 안무의 『처용』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공연은 재미있고 잘 만든 것 같은데 주제의식이랄까 작가적 관점이 부족했어요. 처용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었고요. 그럴 경우 공연 자체로는 완성도를 갖췄는데, 작품으로서는 비어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안무를 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죠. 춤작품에서는 작가성과 안무가 같은 뜻이에요. 뮤지컬, 대중가요, 오페라, 연극 등에 모두 안무라는 타이틀을 넣을 수 있지만, 춤작품에서 안무가는 작가와 동격이거든요. 작품이란 작가가 본인의 주제의식을 담는 형식을 뜻하기 때문에, 작가로서 안무가는 어떤 주제, 추상적인 내용을 ‘구성’을 통해 작품으로 구조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로서 안무가의 개념은 현대무용에 와서 비로소 성립해요(물론 저작권 문제와도 관련이 있지만요). 아까 작품과 공연의 분리를 말했는데, 그것과 관련된 부분이 있어요. 최근 공연들이 대중화되면서 안무가 공연의 일부에 불과할 때 작가라는 타이틀은 사라지거든요. 좋은 공연일지라도 예술적인 춤작품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가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퍼포먼스에서 작가 개념을 해체하면서 안무 개념을 갱신하는 경우도 늘고 있고요. 서유럽의 ‘컨템포러리댄스’는 바로 이 작가주의 해체와 관련해 그 이전의 무용사조와 구분된다고 봅니다. 현대무용의 역사에서 안무에 대한 관념을 한 번 더 바꾼 것이니까요.
심정민 _ 최근 평단의 문제도 거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최근 들어서 특히 조동화 선생의 타계 후에 평단의 문제가 급격하게 심각해졌어요. 첫 번째는 아무나 평론가라고 한다는 거예요. 무용이나 평론에 대한 전문성이나 책임감이 결여된 이들이 스스로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자주 이용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은 짚어봐야 할 겁니다. 두 번째, 이는 그동안 본분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평론가들이 다수 있었기에 더욱 촉진된 감이 있습니다. 평론가가 모든 공연을 볼 필요는 없으나 어느 정도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는 충분히 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정확히 판단하여 제대로 쓸 수 있는 전문성도 매우 중요하고요. 세 번째, 평론가라는 위치를 악용하여 무용가 위에 군림하거나 무용가와 경쟁하려는 수단으로 평론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2017년 가장 주목한 사건 ‘국립무용센터 설립’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점
박민경 _ 평단의 문제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네요. ‘평론가’의 문제를 마치 남 이야기처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평론’에 대해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좀 그래서요. 변화된 평론가의 기능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이야기가 되어 왔고, 또 여러 자리에서 ‘네가 옳다 내가 옳다’ 하는 식이어서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비평을 글자 그래도 ‘비판과 평가’ 혹은 ‘비판적 평가’로 풀이한다면, 현재 우리 춤평론의 문제는 ‘비판의 실종’이라는 게 맞을 겁니다. 그저 평가만 있고 비판이 빠져 있는 식이죠.
어쨌든 ‘평론가의 입장에서’ 마지막으로 2017년 가장 주목한 사건을 말씀드리면, ‘국립무용센터 설립’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점입니다. 2018년에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사안인 것 같은데, 가장 놀랐던 것은 연말에 이 문제를 한국무용협회가 포럼 같은 공식 자리를 통해 공표했다는 사실입니다. 몇 년 전부터 국립안무센터, 국립무용센터 같은 용어가 회자되었어요. 조금 명확하게 들었던 것은 국립현대무용단에 안애순 감독이 부임했을 때입니다. 안애순 감독이 한국공연예술센터 장이었을 때 그리고 아르코예술극장이 무용중심극장일 때 구상이 있었어요. 국립현대무용단이 정규 단원도 없이 프로젝트 단체로 출범할 때 이 단체의 정체성 논란이 있었는데, 안애순 감독이 부임하면서 국립안무센터로의 전환이 이야기되기도 했습니다. 단원도 없는데 어떻게 컴퍼니가 됩니까? 말이 안 되죠. 대신 여러 프로젝트를 감독의 의지대로 기획할 수 있음으로써 예술감독의 정기공연 외에도 국내외 안무자 공연 지원, 안무랩, 아카데미, 무용학교 같은 소소한 기획들이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컴퍼니가 아니라 센터로 변환된다, 그때 정규단원은 불가하다는 문화부 방침이 결국 국립현대무용단을 국립무용센터로 전환시키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도 있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그러던 중 서울무용센터가 설립되었는데, 안애순 감독의 임기가 끝나면서 거기서 일했던 혹은 작업에 관여했던 무용인들이 서울무용센터의 기획으로 옮겨간 흔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서울무용센터가 국립무용센터의 시범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실험처럼 운영되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지난 봄여름에는 설립추진이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저는 그때만 해도 국립현대무용단과 서울무용센터만 주목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조남규 이사장이 한국무용협회 선거 때 공약으로 이야기를 했다고 해요. 그게 좀 깜짝 놀랐던 겁니다. 한국무용협회가 국립무용센터를 설립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무용협회를 국립무용센터로 전환하는가의 문제로 저는 이해했기 때문이에요. 한국무용협회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에요. 다른 협회들처럼 지원금 받아 행사하는 일밖에 안 하거든요. 그러면서 많은 행사를 독식하고 있어서 불만도 많았고요. 사실 없어진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무용사회의 기능이 미비했어요. 그런 사업들은 다른 협회들이 나눠서 해도 되니까요. 그러는 와중에 국립무용센터를 핫이슈로 끌어왔으니 일단 큰 주목을 받아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어쨌든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자를지 어떨지 최대 관심사입니다. 내년에 국립무용센터 설립에 온 힘을 다해서 조금이라도 진전이 되면 획기적인 성과가 될 것이고, 그냥 말만 꺼내고 나 몰라라 한다면 여전히 실망스러운 한국무용협회가 되는 것이고요.
심정민 _ 대학 무용과가 속속 없어지다 보니까 신진 무용가를 길러내는데 있어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현장적이고 실제적인 교육이 필요한데 국립무용센터가 건립된다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우리 무용계의 단체, 협회, 기관 등이 처음엔 좋은 취지로 출발해서는 결국 또 하나의 이해집단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국립무용센터를 통해 무용계의 활로모색, 전문무용가 양성, 창작 활성화 등 여러 순기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먼저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고 전문화와 분업화를 확립해야 할 겁니다. 이를 위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출범 전에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설계해놓아야 한다고 봅니다.
박민경 _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본래의 취지대로 콘서바토리로서 잘 되었다면 모범이 되었을 텐데, 한국 대학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변질되었습니다. 국립무용센터가 설립된다면 한국무용협회가 국립무용센터로 바뀌는 거죠. 이름만 바뀌는 게 아니라 조직 자체가 바뀌는 거죠. 한국무용협회의 사업들은 다른 협회나 조직, 단체들이 각자 성격에 맞게 가져가거나 필요없는 것은 없애거나 하면 됩니다. 하도 유사사업이나 페스티벌이 많아져서 「서울무용제」처럼 성격이 좀 바뀐 오래된 사업들이 정리가 되면 또 새로운 행사들이 생겨나기도 하겠죠. 국립무용센터로 전환되면 더 많은, 시대에 부응하는 사업들이 가능해지니까 더 좋은 것이고요.
우리가 좌담 서두에 한국무용협회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끝도 거기네요. 국립무용센터든 국립안무센터든 긍정적으로 봐야 할 것은, 비참한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앞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야기도 길게 했지만, 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존속하든 아니면 다른 조직으로 탈바꿈하든 무용은 무용만의 독립적인 지원기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국립’이 어떻게 정부시책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가질 수 있겠느냐는 의심이 있겠지만 그렇게 해야 된다고 봐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 분야의 정책들을 수행하는 기관으로서 예술정책을 수립하고 지원을 하는 것과 별도로, 무용 분야에 필요한 사업들을 자체적으로 하는 것도 필요하니까요. 아까 서울문화재단과 서울무용센터의 이야기도 했듯이, 서울문화재단이 시민을 위한 문화정책, 비전문가 및 아마추어 예술활동 지원을 수행하면, 서울무용센터는 ‘전문적인 무용’ 지원을 하는 기구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투 트랙 방향이 그런 것이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국립무용센터도 그런 관계처럼, 좀 더 포괄적인 업무를 하는 조직과 무용에 훨씬 더 디테일한 조직으로 나아가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무용뿐만 아니라 어떤 예술분야도 그렇게 되어야겠죠. 어떤 측면에서 우리는 문화와 예술이 분리됨과 동시에 또 협력하거나 관계맺고 있는, 그런 시대에 있기 때문입니다.
조은경 _ 아쉽지만 이번 좌담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그래도 지난 해, 그리고 그 전 해 보다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조금 가벼운 분위기에서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좌담이 되어서 세상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 한해도 춤현장을 지키면서 좋은 활동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