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8일 인쇄
2017년 1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7년 11월호 통권 501호 |2018년 9월 19일 수요일|
 

춤산책

 

굿바이 ‘프렌즈’, 미국의 마지막 황금기를 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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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李東祐)(춤평론)

예전 같으면 보고 싶은 영상을 DVD로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타이틀 별로 DVD가 집안에 점점 쌓이는 문제가 생겼지만 요새는 원하는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검색만 해서 바로 볼 수 있는 서비스가 있어서 과거, 현재의 웬만한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아무런 기다림 없이 감상 할 수 있다. 이제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프로그램을 비디오나 DVD 녹화기로 소장해서 보던 것이 이제는 그럴 번거로움 없이 ‘다시보기’ 서비스를 통해 볼 수 있고 유튜브를 통해 웬만한 영상자료들을 보고 필요하면 다운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실로 ‘소유’의 세상은 가고 ‘공유’의 시대가 온 것 같다. 이런 문명의 혜택을 빌려 오랜만에 미국의 한 유명 시트콤을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연속으로 감상하게 됐다.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꽃은 시트콤이라 할 수 있다. 시트콤이란 ‘시추에이션 코미디(Situation Comedy)’의 합성어로, 이야기가 계속적으로 이어나가는 드라마와는 달리, 매회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인다. 한국에서는 저녁식사가 끝난 8시 이후, 황금시청시간대라 할 수 있는 시간대에 드라마를 방영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주로 30분짜리의 다양한 시트콤을 집중적으로 방영하는 방식을 택한다. 지금은 이 시트콤의 전성기가 한풀 꺾였지만, 1990년대에서 2000년 초만 해도 방송사들마다 “소 퍼니(So Funny, ABC)”, “머스트 씨(Must See, NBC)”등 슬로건을 내세우며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을 주연 내지는 특별출연으로 영입하는 등 한때 채널 간 과열 경쟁을 벌인 적도 있었고, 몇몇 시트콤들은 지금도 그 명성과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1994년 여름은 LA로 장기간 놀러갔던 시기다. 엄밀히 말하자면 텔레비전을 좋아하던 학교 기숙사 룸메이트를 통해 알게 된 시트콤이라는 신세계에 빠져 그 녹화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서 할리우드로 찾아갔던 것이다. 거기서 다수의 시트콤 녹화과정을 지켜봤다. 보통 파라마운트, 워너브라더스, 폭스 등의 영화 스튜디오 내에 시트콤 전용 촬영 스튜디오가 마련되어 있다. 보통 촬영은 저녁 6시 경부터 시작하여 10시 정도까지 진행된다. 방청권을 발행하는데 유료인지 아닌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확실한 것은 인기 있는 시트콤일수록 방청권을 구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시트콤 촬영에 방청객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첫째로, 그들이 촬영장면을 보며 나타내는 반응을 살피는 것, 반응이 시큰둥하면 대본 작가들이 그 자리에서 긴급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그들의 웃음소리 등 현장의 반응을 효과음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일상생활에서는 보기 힘든 유명 배우들을 지척에서 볼 수 있다는 방청객의 특권은 매력적인 것이기도 하다. 시트콤 한 장면 당 서너 대의 카메라가 돌아가지만 같은 장면을 몇 번씩 반복해서 찍기도 하고, 다음 장면을 위한 준비가 몇십 분씩 걸릴 때도 있다. 보통 9월에서 다음해 5월까지를 한 시즌으로, 7~8월에 한 시즌동안 방영분량을 촬영을 시작하는 듯했다. 여름동안 할리우드에서 제작과정을 지켜 본 시트콤을 안방에서 느긋하게 시청하노라면, 마치 내가 출연한 것 마냥 그 재미가 배가가 된다. 아무래도 특정 시트콤에 방청 경험을 하면 그 프로그램의 충성 시청자가 되기가 쉽지 않을까. 이것이 세 번째 이유일 것이다.

내가 할리우드에 갔었던 그 해, 시트콤의 황금시대에 NBC 방송사는 새로운 시트콤을 발표했다. 바로 첫 방송부터 2014년 방송 종영 10년 동안 꾸준히 높은 시청률을 장식한, 모든 시트콤의 전설이 된 「프렌즈」 였다. 뉴욕 맨해튼의 그리니치빌리지에 사는 20~30대의 세 명의 남자와 세 명의 여자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로, 한국의 첫 시트콤 제작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보통 뉴욕을 배경으로 하니 뉴욕에서 「프렌즈」를 제작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미국의 어느 도시를 무대로 삼던, 촬영지는 캘리포니아, 할리우드라는 것이다. 「프렌즈」의 인기 비결은 친구들 간의 끈끈한 결속력 뿐만 아니라 여태껏 서구 문화에는 생소한 ‘미운정’이라는 것을 간접 경험케 했는데, 그 이야기의 무대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맨해튼 한복판이라는 것이라는 점이 미국인들의 정서를 움직였기 때문이라 해석된다. 여기에 나오는 여섯 명의 주인공들은 얼핏 보면 서로서로가 어울리지 못할 판이한 성격과 개성을 가졌음에도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서서히 인정하고 풀어나가며 점차 가족보다 더 진한 이웃사촌이 되어간다는 내용으로 미국 프로그램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기 때문이다.
「프렌즈」 이전에 미국을 대표하는 시트콤은 「치어스(CHEERS)」였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전 보스턴 레드삭스 야구선수 출신이 운영하는 지하 술집의 이름으로, 각양각층의 소시민들이 모이면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코믹한 이야기와 함께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를 다루었다. 이 역시 1982년부터 1993년 까지 11년 동안 인기 끌어오다가 막을 내렸다. 사실 미국의 전설이 된 시트콤은 1950년대부터 존재해왔으나, 미국의 시트콤은 한국인들에게도 친근한 「빌 코스비 쇼」로 인식되는 ‘가족용‘이었다. 「치어스」를 기점으로 시트콤의 주제가 ’선정성‘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4년 5월6일, 방영 10년을 끝으로 「프렌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프렌즈」는 한낱 세 남자 세 여자에 대한 일개 코미디 프로그램이라고만 하기에는 그 당시 (미국의) 시대적 변화의 선상에서 많은 것들을 대변해주었다. 일단, 더 이상 주 시청대상을 가족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선정성을 노골화시켰다는 의미다. 한국인에게 미국은 개방적인 나라로 보여지지만, 사실 청교도들의 이민의 나라로서 TV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유럽에 비해 무척 보수적으로 성적인 표현에 대한 규제가 많다.1)
이전의 대부분 미국 시트콤은 가족 단위 혹은 가족적인 분위기 때문에 선정적인 면을 음성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표현했다면, 「프렌즈」는 아이러니하게도, 선정적이고도 직설적인 대사와 자유분방한 연애생활의 표현 속에서 묘하게 오늘날의 가족에 대한 정의를 생각하게 한다. 첫 방송부터 결혼식장에서 도망친 철부지 레이첼 그린, 레즈비언인 아내로부터 이혼당한 전도유망한 젊은 교수 로스 겔러를 오빠로 둔 강박증을 가진 요리사 모니카 겔러, 어릴 때 오븐 속에 머리를 넣고 자살한 엄마를 둔 가수 겸 안마사 피비 부페이, 어린 시절 불안정한 가정환경으로 혼란시기를 겪고 냉소적으로 변한 챈들러 빙, 아빠 빼곤 모두 여자인 대가족 속에서 외아들로 산 바람둥이 배우지망생 조이 트리비아니 등 하나같이 아이러니한 면을 가지고 있고 불완전한 배경을 가진 이들은 마치 가족들을 피해 외딴섬에 불시착한 도시 난민이기도 한 것이다.
이 여섯 캐릭터 중 가장 돋보인 캐릭터는 레이첼 그린이었다. 안락한 생활이 보장된 혼처를 거부하고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결혼식장에서 도망친 레이첼의 결정이 바로 「프렌즈」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또한 해를 거듭 할수록 레이첼은 친구들과 의미 없이 소일하며 돈만 쓸 줄 알던 무개념에서 돈을 벌줄 알고 자신의 능력을 발전해나가는 전문인으로, 더 나아가 한 아기의 어머니가 되어 가는데, 아빠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처음엔 미혼모의 길을 선택한다2).

이런 「프렌즈」에는 당시의 시대를 반영하는 코드가 있었다. 「프렌즈」가 탄생했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90년은 나름 전환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베트남 전쟁을 상기시킨 부시정권이 일으킨 의미 없는 이라크 전쟁 그리고 LA 폭동으로 이어진 로드니 킹 사건으로 보수정당인 공화당 출신 조지 부시 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미국의 젊은 층은 시대가 바뀌기만을 벼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연상시킬 만한 40대 젊은 대통령 빌 클린턴 정부는 신선했다. 한 토크쇼에 나와 선글라스를 끼고 색소폰을 불어재끼던 빌 클린턴의 모습은, 고리타분한 조지 부시의 이미지와는 판이한, 그 자체가 진보주의의 상징이었다. 그야말로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8년은 미국의 경제가 호황이던 시절이었으며, 다원화시대가 도래했다. 여섯 친구들처럼 확실치 않는 불안한 미래이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과 낭만이 있었다3).
게다가 인간적인 정이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이 없었던 아날로그 시대였음도 한몫했다. 인간관계에서 스마트폰은 큰 영향을 미쳤다. 얼마 전 레이첼 역을 맡은 제니퍼 애니스톤은 영국의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프렌즈」의 성공을 ‘프렌즈-르네상스‘라고 표현하면서 방영 당시에의 세대는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이라 했다. 이어 그녀는 “스마트폰을 그만보고 대화를 해야 한다”며 “우리가 스스로 초래한 결과”라며 씁쓸해 했다고 한다.
재임기간 스캔들로 얼룩진 클린턴 정부의 뒤이은 조지 부시 2세의 당선 그리고 재개된 이라크 전쟁과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가 사라져버린 맨해튼… 집단 우울증이 걸려버린 미국은 더 이상 「프렌즈」 속의 배경과 같지 않게 되었다. 「프렌즈」를 이어나갈 만한 영감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프렌즈」와 함께 당시의 황금시기의 미국을 대표하는 드라마가 있다면 단연 「섹스 앤 더 시티」일 것이다. 「프렌즈」보다 4년 뒤에 방영을 시작했음에도 같은 해인 2004년에 종영했다. 같은 이유로 종영했을 것이다.

이 두 프로그램은 뉴욕의 다이내믹함과 낭만을 그렸다는 긍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맨해튼에 태어나서 일생을 허드슨 강을 건너본 적이 없는 골수 뉴요커들에게 볼 수 있는 폐쇄적인 면 - 이 여섯 명 속 외에는 친구로서 끼기가 힘들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만의 유대감이 너무 강하다는 점, 그들의 방식 (혹은 미국식)이 아니면 이단시 되는 점, 그럼에도 유럽 (프랑스)의 문화에 대해서는 은근히 동경한다는 점, 방영 중에 일어났던 911테러에 대한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 종영이 되어감에 따라 주인공들의 생활영역을 맨해튼 바깥으로 넓혀 나가며 막을 내린다는 점 등이 공통적이면서도 황금시기이기에 어려움 없이 안락한 환경에서 자란 철부지가 이제 진짜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인상을 준다.
한 번도 테러를 겪은 적이 없었던 미국은 경제의 상징이었던 세계무역센터 두 채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면서 자존심도 함께 무너졌다. 아픈 만큼 성숙했어야 하는데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이들의 마음은 오히려 폐쇄적이고 강퍅해지는 결과만을 일으켰다. 「프렌즈」 이후 눈에 띄는 해학적 시트콤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시대가 삭막해지고 거칠어진 만큼 더 이상 따뜻함의 여운은 없어지고 더 높아진 선정성과 말장난뿐인 공허함만 남을 뿐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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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면 폭력에 대한 표현은 상대적으로 관대한 것이 아이러니하다.

2) 참고로, 「CHEERS」와 「프렌즈」 중간인 1988년에서 1998년까지 방영된 「머피 브라운」이라는 시트콤에서는 뉴스 진행자인 주인공 머피 브라운이 미혼모가 되는 에피소드가 보수당의 거센 비난 대상이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이는 획기적인 설정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 때문에 보수당이 국민들에게 비난을 받게 되며 선거에도 진보당이 이기는 결과를 낳을 정도로 이제 미국의 시트콤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역량의 가능성을 엿보게 되었다. 「머피 브라운」이 없었다면 「프렌즈」의 레이첼이 미혼모가 되는 설정을 생각지도 못했거나 미혼모가 되는 것에 대해 보수당의 첫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3) ‘「프렌즈」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참조, 신기주 기자, 2004. 0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