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8일 인쇄
2017년 1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7년 11월호 통권 501호 |2018년 6월 23일 토요일|
 

동숭문화광장

 

춤이 우리의 생활이 될 때까지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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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철(林然哲)(건양대교수, 예술경영)

‘500’이라면 어쩌다 500원 짜리 동전이 필요할 때나 생각나는 숫자였다. 그러나 지난 달 10월은 ‘500’이 세계사적으로, 또 한국무용사에서 큰 무게감을 갖는 숫자이자 화두가 되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마르틴 루터(1483~1546)의 종교개혁 500주년(10월 31일)이 갖는 의미와 10월 호로 발행된 통권 500호의 ‘춤’지를 읽으면서 우연히 마주친 숫자 ‘500’이 갖는 의미가 세계사적 사건과 한국무용사의 사건으로 오버랩 된 것이다. 두 사건은 ‘500’이라는 숫자의 인연을 갖고 있지만 종교와 예술이라는 분야도 다르고 발생연도도 종교개혁은 500년 전 일이고 「춤」지의 시작 1976년으로 41년 전이라는 큰 차이가 있다. 이 같은 차이에도 두 사건이 오버랩 됐던 이유는 ‘개혁’이라는 공통의 정신을 두 사건 속에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생연도에 따라 먼저 종교개혁을 보자.
독일인들에게 독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관심 분야에 따라 다른 대답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문학에 관심 있는 이는 주인공 파우스트를 통해 신과 악마 사이의 쟁점이 한 인간을 통해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보여 준 ‘괴테’를 꼽을 수도 있고, 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은 합리주의와 경험론을 종합해 비판철학을 완성한 ‘칸트’를 우선할 수도 있다. 덧붙여 음악 애호가라면 「환희에의 송가」를 음악으로 표현해 인류의 평화를 기원한 악성 ‘베토벤’을 선호할 수도 있다. 한결같이 18세기에 태어나 19세기 초반까지 살며 세계문화사에 큰 영향을 미친 독일의 위인들이다.
그러나 독일인들에게 이들을 포함해 세계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독일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이들보다 200여 년 전에 태어나 중세의 숨 막힐 듯한 질서에 도전해 역사와 문화의 근대적 변곡점을 마련한 ‘마르틴 루터’를 꼽는다. 독일인들이 루터를 꼽는 이유는 그가 중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변곡점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파우스트」도, ‘비판철학’도, 「합창」 교향곡도 그 같은 사상과 예술의 탄생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루터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동의어가 종교개혁이다. 바로 그 종교개혁이 올해로 500주년이고 지난 달 31일이 500년 전 출발의 시점이었다. 1517년 10월 31일 자신이 교수로 있던 비텐베르크 대학 궁정교회 정문에 루터가 써 붙인 당시 교회 관행인 면죄부(실제로는 벌을 면하게 해주는 면벌부)에 대한 ‘95개조 반박문’은 지금 보면 당연한 내용이다. 그러나 루터 당시로서는 그가 속했던 교회와 그 수장인 교황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종교개혁의 ‘신호탄 콘텐츠’로 평가 받는 95개 조항은 구체적으로 면죄부에 대한 비판 내용을 담고 있지만 핵심은 제20∼24조에 있다고 역사가들은 평가한다. 제20조는 “교황의 모든 벌의 전권적 면제는 절대적 의미에서 모든 벌의 면제가 아니라 오직 교황에 의해 부과된 벌만을 의미한다”는 선언이다. 이어지는 21조는 “20조에 따라 교황이 발부한 면죄부로 사람들이 모든 벌로부터 해방된다고 주장하는 면죄부 설교사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루터가 95개 조항을 교회정문에 써 붙인 날 최고의 면죄부 판매인으로 꼽혔던 도미니크회 수도사 요하네스 테첼은 비텐베르크에서 열심히 면죄부 판매설교를 하고 있었다.
테첼은 마인츠 대주교직을 당시 독일 화폐 2만9000 두카트의 고액으로 낙찰 받은 20대의 젊은 대주교 알브레히트 폰 브란덴부르크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 열심히 면죄부를 팔고 있었다. 알부레히트는 대주교 낙찰을 받기위해 첫해 예상수입금만 먼저 납부하고 나머지 금액은 면죄부를 팔아 교황청과 절반씩 나눠 갖기로 합의했었다. 테첼의 면죄부 설교는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예를 들어 “현세에서 자손들이 낸 동전이 헌금함에 ‘쨍그렁’ 하는 순간, 조상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직행한다”와 같은 것이다. 테첼의 ‘설교’는 루터를 자극시켜 반박문 제27조의 내용이 된다. 루터는 면죄부를 구입하는 신자들이 “사기를 당하고 있다”고(제24조)고 밝혔다.
면죄부 판매가 사기라고 직설한 루터가 죄를 용서받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회개. 제36조에서 “어떤 그리스도인이고 진심으로 자기 죄에 대해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은 면죄 증서가 없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고 밝혔다. 신앙은 내면적이고 정서적인 믿음이며 죄는 금전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함으로써 사해진다는 주장은 당시 독일 민중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켜 종교개혁이라는 세계사의 한 봉우리를 만들게 된다. 종교개혁의 영어 표현은 리포메이션(Reformation)이다. 폼(form), 즉 모습을 다시 형성시킨다는 의미에서 루터는 당시 사람들에게 세상의 전부였던 종교를 다시 형성하려 시작한 게 종교개혁이었다.

춤평론가 고 조동화(1922~2014)가 지난 달 통권 500호에 이른 「춤」지를 41년 전 창간한 의도도 무용에 대한 당 시대인의 인식을 다시 형성해보려는 개혁의 의도가 있었다. 500호에 실린 고인의 100호(1984년 6월) 발간사에서 춤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는 고인의 명확한 뜻을 파악할 수 있다.
“지금은 (잡지 제목을) ‘춤’으로 (정했다고) 해서 춤은 천(踐)하고 무용은 높은 예술이란 근대무용사조적(近代無用史潮的) 잘못된 인식에서 넘어서 오히려 이 단어의 음향에서 ‘오늘’과 ‘우리’를 느끼게 되었다.”
고인은 창간 당시 ‘춤’이란 잡지의 제호를 놓고 시대에 맞는 제목인지 갑론을박이 있었음을 100호 발간사에서 비치고 있다. ‘춤’이란 제호가 “문화사적 용어가 아닌 죽은 말이어서 잡지 이름으로는 안 좋다”는 부정적인 견해가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세 권만 내면 체면은 설 것인데 책이름이 아무거면 어떠냐” 더 부정적 견해 때문에 ‘춤’이 제호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부정적인 견해 속에 태어났지만 창간자의 춤에 대한 긍정과 확신이 있었기에 ‘춤’지는 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혁시키고 통권 500호라는 새 역사를 쓸 수 있는 동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500호까지 발행되는 역사 속에서 ‘춤’지는 조선 왕조시대부터 낮게 인식돼 왔던 춤의 사회적 인식을 뛰어 넘어 당당한 예술의 한 장르로 격상시키는데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쯤에서 다시 루터의 종교개혁을 생각해보면 루터의 사상과 행동은 500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유효함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는 16세기보다 더 황금만능주의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연구비를 사적 용도로 사용하는 학자를 비롯해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유해식품제조도 마다 않는 일부 식품제조업자까지. 부실건물을 짓는 건축업자나 친인척을 공공기관에 취업시키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는 정치인과 고위관료의 행위 등을 보면 돈을 위해 면죄부를 파는 테첼의 행위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이런 일반사회의 황금만능 풍조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루터의 개혁정신이 필요하지만 뜻있는 종교계인사들은 종교개혁의 적자로 태어난 개신교에게도 종교개혁은 현재진행형으로 절실하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의 초기 기독교는 전통사회, 일제, 공산주의자와의 갈등으로 핍박받았고 순수한 믿음의 동기 덕분에 발전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상당수 교회가 이제 돈도 생기고 명예와 권력도 생기자 이를 바탕으로 교회는 다시 사람을 모으기 위해 교회에 가면 돈도, 명예도, 권력도 생긴다고 말하고 있는 게 단적인 사례이다. 이른바 ‘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이 한국교회를 풍미하고 있는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도 다시 성서를 바탕으로 한 신앙, 루터정신의 회복이 절실한 시점이 지금이다.

이처럼 루터의 종교개혁이 21세기에도 여전히 필요하듯이 「춤」지의 창간 정신도 앞으로 더욱 필요할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춤’이란 단어가 통권 500호에 이르도록 ‘춤’지를 통해 누적되어 오면서 이제 춤을 천하다고 인식하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그러나 100호 발간사에서 조동화 발행인이 꿈꿨던 춤이 ‘우리’의 것이 되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우리’가 무용인만을 뜻한다면 맞는 말이지만 많은 국민은 ‘춤’을 자신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2016년 문화향수실태조사(한국문화관광연구원) 결과가 그 같은 현실을 보여준다. 과거의 조사에서도 분야별 예술행사 관람률에서 무용은 3%를 넘은 적이 없었지만 작년 조사에서는 그나마 1.3%로 집계돼 개혁을 넘어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만이 무용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무용의 창작, 평론, 보급, 교육 등 모든 면에서 개혁의 절박성이 「춤」지를 창간했던 1960년대 보다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게 요즘이다.
500년이 지났어도 종교개혁의 정신이 유효하고 필요하듯이 「춤」지가 통권 500권을 발행했어도 춤이 ‘우리의 것’이 되어 있지 않는 한 조동화의 발간 정신은 미완일 수밖에 없고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바라기는 8년쯤 지나 「춤」지 600호가 발행될 때쯤 분야별 예술행사 관람률에서 현재의 뮤지컬처럼 무용의 관람률이 10%쯤 됐으면 좋겠다. 국민 열 사람 중 최소 한 명 이상이 무용을 관람한다면 춤은 「춤」지의 발간사처럼 우리의 것이 되고 발간의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개혁을 달성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개혁은 춤이 순수예술인 탓에 한 잡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가의 정책적 지원과 메세나와 같은 기업의 무용지원, 언론의 관심이 있어야 한다. 「춤」지는 이런 일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춤」지 501호는 이 개혁을 달성하기 위한 첫 걸음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