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춤산책

정작 한국 드라마에 대해서는 심드렁하면서도 “미드”, “영드” 라고 부르는 해외 드라마는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들은 드라마를 즐기기보다는 드라마를 통한 언어학습은 물론 현지인들의 생활상과 정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 때문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최신 일본 드라마를 일본 전문채널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그 나라에나 가야 접할 수 있었던 대중문화를 처음에는 현지에서 불법 녹음을 한 비디오를 통해서, 그 다음에는 인터넷 쇼핑몰을 통한 DVD 구매로, 이제는 인터넷 다운로드를 넘어 글로벌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텔레비전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세계의 드라마를 보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이제는 언어를 넘어 그 나라의 정서와 문화, 사는 모습 등 다양해졌다. 특히 8·15 해방 후 우리에게는 아직까지도 보이지 않는 껄끄러움이 있는 일본문화도 포함된다.
일본과의 대중문화 교류가 소극적이었던 시절에는 한국 방송사들이 일본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협의 없이 모방해 저작권 논란을 일으킨 시절도 있었지만 오히려 지금은 일본 드라마에서 한국식 막장드라마를 보게 된다.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똑같다고는 하지만 한국인들에 비해 소심한 일본이 자기식의 해석 없이 정서가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이라는 것이다. 사실 일본 애니메이션만 봐도 한국정서상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답답한 일본인들의 소심증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일본 TV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일본사람들은 미식(美食)에 대한 관심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많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실제로 일본에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한국과 비교할 바가 못 될 정도로 다양하기 때문에 이야기 소재도 다양하다. 그래서인지 소위 “먹방“이라 불리는 음식소개 드라마 역시 일본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바다.
최근 일본을 대표하는 「고독한 미식가」는 작가 쿠스미 마사유키라 원작으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만화이다. 그 인기에 힘입어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제작됐는데, 직업상 전국을 혼자 돌아다니는 인테리어 오퍼상 고로(五郞) 씨가 일하면서 허기를 달래기 위해 들른 식당의 메뉴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먹는다‘는 것은 배를 채우는 일일 뿐만 아니라 조급함에서 여유로움으로의 추구이다. 매 회 주인공은 일을 끝낸 후 혈당 떨어진 당뇨병 환자처럼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주인공이 필사적으로 맛 집으로 달려간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운 후에야 식당 주인과 손님들을 돌아보며 비로소 느끼는 행복감으로 마무리를 한다. 그 행복이란, 식당 주인은 한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가업을 이어 이웃사촌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역할이며 손님 또한 식당 주인과 담소를 즐기며, 단골 메뉴를 먹으며 행복해 하는 소박한 풍경을 독백으로 표현한다. 단순히 먹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교훈적인 메시지를 잊지 않는 의무감은 정서가 다른 우리로서는 강박에 가까우며,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이러한 연출은 군부 독재시절 모든 음반에 의무적으로 집어넣어야 하던 건전가요 가사나 아직도 학교나 공공기관 정문에 걸려있는 “선진조국 창조”와 같은 말도 안 되는 표어를 상기시킨다. 결국에는 세련된 멜로디로 치장한 건전가요 같은 교훈으로 끝내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 드라마는 건전한 일본, 더 나은 일본, 이상적인 일본을 표방한다. 일본 각지의 음식과 식당 소개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의 주인공 고로 씨의 눈에 비치는 일본인, 그리고 그가 바라는 이상적인 일본인 상을 간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반면, 요사이 일본에서는 한국의 막장 드라마를 표방하는 TV 드라마가 눈에 띄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사람들과 막장 드라마도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기만 한데, 살기 힘들수록 사람들이 매운 것을 찾듯, 그만큼 일본이 힘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대통령 탄핵사건 이후, 미국과 일본 역시 지도자들 역시 탄핵 위협을 받고 있는 시점에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 일본, 미국은 정치적인 면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공동운명체이라는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남다르게 다가온다. 게다가 이 세 나라는 각각 2011년 3월11일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2014년 4월16일에 생긴 세월호 사건 그리고 그 이전에 일어났던 2001년의 미국의 9·11 테러와 같은 국가적 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초래한 사건을 통해 사회적 분위기가 좋은 식이든, 나쁜 식이든 크게 변화됐다. 그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진통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큰 후유증을 남기게 마련이다. 변화를 겪기 전엔 홍역처럼 치러야 하는 진통의 흔적들은 정서적으로도 남아서 몇 년이 지나도 그 우울의 분위기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오랫동안 남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겪게 되는 재난 후 후유증 보다는 부유한 국가에서 체감하게 되는 정신적 충격이 더 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잃을 것이 많은 위치일수록 그 상실감과 충격은 클뿐더러 여태껏 유지해온 품위와 수준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은 더욱 치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몸부림이란, 더욱 거칠어지고 수위가 높아진 일본 아베 총리의 망언과 정치적 부패스캔들에 대한 처신, 그리고 대통령 후보 때부터 우려스러웠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 정책’ 등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외국의 문화가 범람해오면 고유의 문화가 훼손될까봐 두려워 이른바 쇄국정치를 펼친 적도 있었지만 그 정책은 도리어 한 나라를 하나의 ‘고인물‘로 전락시켰다. 오히려 지구촌화 되면서 사람들의 시야가 넓어지면서 생기는 것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아지고 부족한 점을 서로 지적하며 보완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다.
트렌드와 유행은 당시의 시대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나라가 만들어내는 텔레비전 콘텐츠 역시 단순한 오락거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일부를 표현하기 때문에 조금만 생각을 하면서 보면 텔레비전은 단순한 ‘바보상자’가 아닌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며 가지게 되는 생각의 가지들은 의외로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틈틈이 이러한 생각의 가지들을 이야기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