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살롱

덥다. 가만히 있어도 지치는 데 뙤약볕 아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이들을 보면 “미쳤군”이란 말 말고는 나오는 게 없다. 자전거는 여름 스포츠다. 옆에서 보기엔 더워 보이지만 타는 사람은 시원하다.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니 바람을 맞는 것이다. 선풍기 앞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 물론 달리다 멈추면 선풍기는 꺼진다. 그러니 그냥 달린다.
세계 3대 자전거 대회로 「뚜르 드 프랑스」(7월), 「지로 드 이탈리아」(5월), 「브얼타 에스빠냐」(9월)를 꼽는다. 모두 뜨거운 여름에 펼쳐진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전거 경기는 「뚜르 드 코리아」다. 6월 초 시작 돼서 장마가 오기 전 마친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경기는 23일씩이나 이어지면서 3,500 킬로나 되는 거리를 달린다. 23일 가운데 이틀을 쉬니 21일을 달리는 거고 하루에 170킬로는 달리는 거다. 내로라하는 선수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일반 동호인들도 그 정도는 탈 수 있다.
자전거로 일반 차도를 달릴 때 어지간한 사람은 시속 30킬로는 난다. (대회 평균속도는 45~46킬로 정도) 그러니 170킬로는 6시간 정도 가는 거리이다. 실제로 보자. 아침을 먹고 8시쯤 길을 나선다. 가는 길에 점심도 먹고, 경치 좋은 곳에서 사진도 찍고, 길고 험한 언덕을 만나서는 꼭대기서 숨도 돌리고 하며 가면 여름 해가 길다 해도 해질 무렵에야 170킬로를 마치게 된다.
이렇게 하루를 자전거 위에서 보내고 나서 뭉친 근육을 스트레칭으로 풀고, 하루 내 흘린 땀을 씻어 내고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넘길 때의 그 기분은 어디서도 살 수가 없다. 이 즐거움을 알기에 한 여름의 더위와 타는 햇살에도 페달을 밟는 것이다. 그래서 자전거는 여름 스포츠다.
맥주를 좋아하신다구요? 그럼 당신도 일단은 자전거 파다. 소주, 막걸리, 사께, 와인, 샴페인, 위스키, 꼬냑, 데낄라 그리고 맥주. 어느 술이 자전거랑 어울릴까? 바로 여름 술인 맥주고 자전거가 여름 스포츠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물증이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거꾼들이라면 다 아는 「메신져스(Messengers)」라는 1999년에 만들어진 일본 영화가 있다. 쿠사나기 츠요시라고 한국예명 ‘초난강’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배우가 주연으로 나온다. 자전거로 서류배달 퀵서비스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인데 잘 나가던 커리어 우먼이 어쩌다 퀵서비스 회사인 ‘도쿄 익스프레스(Tokyo Express)’에서 일하게 된다. ‘어쩌다’ 시한부로 자전거 퀵서비스에 나선 만큼 다른 배달꾼들과 어울리지 않고 남들이 맥주 마실 때 자신은 늘 버릇처럼 샴페인을 마신다. 그러다 마지막에 진정한 퀵서비스 꾼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다른 이들처럼 맥주를 시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남들은 그런 장면이었겠지만 우리 자전거 꾼들에게는 주정체성을 확인시켜준 명장면이었다.
오늘도 퇴근하면서 맥주 한잔 하셨다구요? 자전거 타고 나서 한잔 해 보시라. 진정 맥주의 참맛이 뭔지 알게 될거다. 그렇게 자전거 꾼은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