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살롱

한국에는 ‘가깝고도 먼 나라’가 둘 있다. 일본과 중국이다. 최근 국제 정세가 돌아가는 흐름에서도 이 수식어가 제격이란 생각이 든다. 두 이웃 땅을 꽤 여러 번 드나들며 나름 눈 크게 뜨고 살펴보아도 알 듯 모를 듯 언저리만 헤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7월 초 다산연구소(이사장 박석무)가 기획한 ‘중국 인문기행’에 동참해서 후난(湖南)성 일대를 돌아보면서도 역시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이해가 아닐까 느끼는 점이 많았다. 답사단을 이끈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역시 “수십 번 오고 또 와도 깊고 넓은 중국 대륙의 전모를 알 수 없다”고 토로할 정도다.
이번 기행에서 제일 반가웠던 곳은 ‘중국의 피카소’라 칭송받는 화가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의 고향 창사(長沙)였다. 한국 화단에도 큰 영향을 끼친 치바이스인지라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를 둘러본다는 일에 가슴이 뛰었다. 마침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7월31일부터 10월8일까지 「치바이스-목장(木匠)에서 거장(巨匠)까지」가 열려 더 호기심이 일었다. 한·중 수교 25주년 겸 치바이스 서거 60주년을 기리는 특별전에 앞서 본바닥을 살피니 안복이라 할만 했다. 창사는 가난한 시골 목수였던 치바이스가 독학으로 수만 점 그림을 그리며 중국 근·현대 미술계의 최고봉에 이른 터전이다. 한낱 변방의 무명 화가인 그를 중앙 베이징으로 모셔 자칫 묻힐 뻔 했던 고수의 진가를 알린 이가 전국미술가협회 주석 자리에 올랐던 쉬베이홍(徐悲鴻)이다. 패거리끼리 알음알음 해묵은 화법을 고수하던 중국 화단에 경종을 울릴 심산으로 치바이스를 천거한 쉬베이홍의 전략은 성공했다.
후난성 상탄(湘潭)시에 들어선 ‘치바이스 기념관’은 90여 평생에 걸쳐 그가 남긴 다양한 작품의 배경을 일별할 수 있는 자료들로 그득했다. 그가 즐겨 그린 새우·병아리·풀벌레·개구리 등 작은 생물, 배추·당근·호박·오이 등 서민의 먹을거리가 난만한 붓질로 펼쳐진다. 그 소박한 일상의 소재가 어디서 왔는지 절로 느낌이 왔다.
치바이스는 생활 속에서 만난 흔하면서도 평범한 것들에 애정을 실어 그렸다. 제가 가장 잘 아는 것들에 마음을 담아 그렸다. 그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놔두고 신기한 것을 그리는 것이야말로 사진작괴(捨眞作怪)”라 했다. 본질을 버리고 괴이함을 지어내는 화가들의 잘못을 경계하는 말이다. 또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기묘함은 같은 것과 같지 않은 것 사이에 있는데, 같은 것은 세상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고 같지 않은 것은 세상을 기만하는 것”이라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두루 활용할 수 있는 이치가 아닐까 싶었다.
역시 현장에 가니 눈이 조금 더 밝아지는 효과가 있다. 치바이스는 새우 다리를 늘 5개씩만 그렸다고 한다. 세어보니 정말 그림마다 5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