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 국립현대무용단 안성수 안무의 『제전악-장미의 잔상』(7월28~30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국립현대무용단의 안성수 예술감독은 자신의 굿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제전악-장미의 잔상』을 7월28~30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선보였다. 그의 굿시리즈는 2009년 땅과 여성을 예찬하는 춤굿 『장미(봄의 제전)』를 시작으로, 2013년 국립무용단과 함께한 기원제 『단』을 거쳐, 2016년 진한 슬픔을 표현한 진혼제 『혼합』을 펼친바 있으며, 이번에 아름다운 미래를 위한 염원을 담은 『제전악-장미의 잔상』으로 마무리된다. 네 개의 연작이긴 하나 굳이 연관성을 따지지 않고 독립적으로 감상하더라도 무리는 없다.
『제전악-장미의 잔상』은 단군신화, 신라의 서동요, 조선의 유랑광대, 제전의 북춤, 무녀와 신녀, 전사 등 시대를 초월한 갖가지 소재를 겹쳐놓았다. 그리고 이는 태평춤, 시간여행1, 전사들의 춤1, 오고무, 시간여행2, 전사들의 춤, 확장1, 곰과 호랑이, 디베르티스망, 확장2(태평춤)와 같은 장면들로 실제화된다. 여러 장면들은 전체로 하나의 이미지로 합일되어 귀결되는데 바로 태평한 세상에 대한 기원이다. 세월호사건, 블랙리스트, 탄핵, 전쟁위기뿐 아니라 세대 간 혹은 성별 간 갈등으로 인해 혼돈과 위기와 아픔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달래고자 하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동시에 그러한 의도를 전혀 의식치 않고 춤과 연주 그 자체만 음미하더라도 무방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컨템포러리 댄스다운 노선을 보인다.
늘 그러하듯 안성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요소는 춤 그 자체다. 현대춤의 자유로운 동작성에 한국춤의 호흡과 어름과 디딤을 어우르고 있으며 발레의 정제된 선형이나 힙합의 리드미컬한 몸짓까지 이따금씩 튀어나온다. 여러 춤 장르를 융해한 채 복잡다양한 짜임새를 펼치는데, 이러한 안무 스타일은 무용수 각자 개성있게 움직이다가도 순간적으로 일체된 무리의 힘을 발휘하거나 예리한 구성적 선을 지켜나가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구심점을 잃고 산만하기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5명의 남녀무용수는 안성수 특유의 안무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이와 같은 스타일을 적절하게 수행하였다. 물론 발전해야할 여지는 남아있으나 단 몇 개월 만에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안무에서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이따금씩 지나치게 한국무용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오고무 장면을 예로 들면 소품과 춤사위와 연주에 있어 한국무용으로의 구체화가 심화됨에 따라 춤 장르 간 융해의 접합점을 찾는 데는 다소 약점을 드러냈다.
작품에 색을 풍성하게 돋우었던 몇몇 무용수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최수진은 기본 테크닉을 바탕으로 밀도, 선형, 표현에 이르기까진 압도적인 수준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아름다운 체격와 외모가 덤으로 느껴질 정도다. 성창용은 남자무용수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최수진과 함께 음양의 조화를 이끌어냈다. 다만 안성수의 춤 자체가 순환적이고 대지친화적이고 선형적이다보니 여성을 돋보이게 하는 관계로, 성창용의 남성적이고 본능적인 움직임 감각이 튀어나올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민지는 유난히 늘씬한 신체로 현대무용에 한국무용을 융해한 안무 스타일을 정교하고 유려하게 실현하였다. 최대의 조력자인 이주희는 안무 통제력이 강한 안성수로부터 유일하게 마음껏 춤출 수 있는 프리티켓을 받은 듯하다. 독무에서 마음대로의 변주를 펼칠 수 있는 특권은 골수까지 안무가의 춤 메소드에 젖어있는 무용수만이 가질 수 있다.
장치, 조명, 의상 등에 의해 조성된 무채색조 분위기에서 음악은 무용과 함께 다채로운 색을 돋우는 요소였다. 전통과 퓨전을 넘나드는 라예송의 작곡은 무대 위에서 대금, 피리, 해금, 장구, 가야금의 라이브연주로 실제화되는데 전통가락을 좀 더 감각적으로 혹은 파격적으로 재창조했더라면 하는 장면들이 없지는 않다. 음악에서 고무적인 점은 무용과의 콜라보레이션에서 이음새가 잘 맞아떨어지는 조각보와 같은 어울림을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제전악-장미의 잔상』이 굿시리즈 중에서 대미를 장식한다는 표현은 적합해 보인다. 한두 부분씩 아쉬움을 남겼던 앞의 세 작품에 비해 규모와 예술성과 실현력을 골고루 갖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안정적인 시스템과 전폭적인 재정이 뒤받쳐주었기에 가능하였다. 그리하여 불안정한 세상에서 희망을 기원하는 컨템포러리 춤굿이 국립현대무용단에 의해 완성될 수 있었다.
최근 무용계 일각에서는, 국립무용단이 창작의 컨템포러리화(化)를 적극 추진하고 국립현대무용단이 한국적인 소재로 깊숙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두 국립단체의 정체성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결국 두 국립단체의 정체성은 어디로부터 출발하고 어디에 구심점을 두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컨템포러리 댄스의 주요한 특질인 분야 간 융복합에서 영상, 연극, 음악, 대중춤, 서커스 등에 대해서는 적극 수용하면서도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예술춤 장르 간 융해에 대해서는 경직된 시각을 두는 것은 일종의 이중잣대라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