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살롱

대학로의 미더스가 죽었다. 아시아 브리지 콘텐츠의 최진 대표가 90억에 이르는 빚의 중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그동안 그와 동거동락한 직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나서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량 안에 번개탄을 피우고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대학로에서 공연사업을 벌리기 전에 연예 매니지먼트사 싸이더스 HQ 부사장으로 근무했다. 다양하고 규모가 큰 사업의 경험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 공연사업 자체의 열악한 환경과 속성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처음 대학로에 뛰어들 때는 매우 조심스러운 자세를 취한 것 같다. 무작정 대작이나 상업연극을 시도한 것이 아니었다. ‘김수로 프로젝트’라는 타이틀을 내건 것도 이름난 탤런트를 이용하자는 뜻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김수로가 연극을 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기에 상부상승하려는 의도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보고 싶다.
김수로 프로젝트의 제1탄 「이기동 체육관」은 너무나 건전한 순수연극이었다. 상업적 공연기획사가 이러한 레퍼토리를 공연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제2탄 「발칙한 로맨스」도 젊은 관객을 유인하는 연극이긴 하지만 그렇게 수준 이하의 것은 아니었다. 여러 레퍼토리를 제작하는 중에 우수한 것도 있어서 호평을 얻기도 했다. 「광염 소나타」, 「커피 프린스 1호점」, 「블랙 메리 포핀스」 등이 그것이다. 2012년에 제작된 「블랙 메리 포핀스」는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창작물인데 원작과 음악이 일본에 수출되어 대성공을 거두고 현재는 공연 DVD까지 출시되어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아시아 브리지 콘텐츠의 최진 대표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듣고 난 후 안타깝게 생각한 것이 있다. 첫째는 그가 상업적 공연제작사의 대표답지 않게 건실하고 우수한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는 것이다. 대학로에서 사업적 성공을 거뒀다는 작품을 보면 내용이 수준 이하이거나 외국작품을 번역하거나 윤색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재미는 있지만 찰라적이고 공허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름난 탤런트와 영화배우를 내걸고 흥행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도 상당수에 이른다. 이러한 경우와 비교하면 최진 대표가 제작한 공연은 상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대학로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피해를 준 것 같지 않다.
둘째로 그가 대학로에서 시작하여 대학로에서 사라진 순수한 대학로의 공연제작자라는 것이다. 회사 사무실도 대학로에 있었고 회사 직영의 연습실, 배우학원, 카페도 대학로에 있었다. 뮤지컬을 본격적으로 제작하면서 강남의 공연장을 사용하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대학로의 공연장을 변함없이 이용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대학로의 미더스’라고 호의적으로 말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자신의 성공이 대학로의 성공이라고 믿었음에 틀림없다. 여기서 성공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나 세계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로가 평소에도 나아질 수 없는 불모의 지역인데 사회적, 경제적 위기가 밀려오면 밑바닥까지 냉각되는 정도의 위약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최진 대표의 죽음은 대학로의 운명과 관련하여 우리 모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